▲이슬아 일러스트레이터
이슬아
- '24살 하고도 6개월가량 살았을 때' 친구와 함께 <24와 2분의 1> 프로젝트를 진행했더라. '재미있게 살고 싶어서' 시작한 걸로 알고 있는데, 구체적으로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 '뭔가를 하자'는 결심이 캘린더 등 제품 생산으로까지 이어지는 게 인상적이었다. 처음부터 그런 부분까지 염두에 두고 시작한 건가."질문 그대로다. 지금도 이어오고 있는 <24와 2분의 1> 프로젝트는 유치원 때부터 한동네에 같이 살던 친구와 시작하게 됐다. 스물넷이 되어서도 인생이 그닥 재미있지가 않아서 '이렇게 우울하게 지낼 수만은 없다'라는 생각에 만들게 된 프로젝트다. 뭘 하는 게 재밌을까 생각해봤는데, 나는 어릴 적부터 그림을 그렸고, 그 친구는 편집하는 걸 좋아하니 내 그림으로 뭔가를 만들어보자는 게 첫 프로젝트였고, 둘 다 돈이 없으니 적은 돈으로 시작해 볼 수 있는 엽서를 만들어 카페 한편에서 판매했다. 그때만 해도 일러스트가 이렇게까지 대중성을 띠진 않을 때여서, 판매를 기대했다기보다는 '우리가 무엇을 만들었다는 것'에 중점을 두고 프로젝트를 했다. '재미'를 위해 만들어진 프로젝트라 지금도 판매를 해서 돈을 번다기보다는 다음 프로젝트를 재밌게 준비할 정도만 번다는 생각으로 작업한다.
엽서 다음이 카드, 그리고 달력이었는데 처음에 사실 하고 싶었던 건 달력이었다. 엽서를 만들면서도 친구와 달력을 계속 얘기했다. '우리가 6월부터 시작했으니 반년 달력을 만드는 건 어떨까, 내년 달력을 6개월치만 만드는 건 어떨까'라며 하고 싶은 걸 얘기했으나 앞서 말한 대로 달력을 제작할 만한 돈이 없어 엽서부터 시작했다. 첫 해 달력은 둘이 알바비를 모아 300부를 만들었는데, 300부를 팔아서 얼마를 남기겠다는 생각보다는 달력을 만들어서 포장하고 배송한다는 그 자체가 재밌어서 신나게 했었다. 둘 다 정말 말도 안 되는 상황을 많이 만들었지만 일을 진행하면서 배우는 게 정말 많았고, 햇수로 5년 차에 접어든 지금도 프로젝트를 하면서 배우는 중이다."
- 미대를 다니다 2학년 때 그만둔 걸로 안다. 남과 다른 선택을 한다는 게 두려운 일인데, 걱정되지 않았나?"'앞으로 어떻게 살지' 하는 걱정은 사실 학교를 다니나 안 다니나 별반 다를 게 없다고 생각했다. 그 생각은 지금도 유효하다. 미대를 다녀본 사람은 알겠지만, 그들만의 리그가 있다. 그림이 좋고, 그림을 그리는 게 좋아서 갔지만, 앞이 보이지 않아서 잠깐 쉬자는 생각에 했던 휴학이었는데 그때 일이 잘 풀려서 지금까지 일러스트레이터로 지내고 있다. 하지만 기회가 된다면 새로운 곳에서 좋은 교육을 받고 싶다. 학교를 다니든 다니지 않든 간에 배우는 건 정말 중요한 일이고, 어떤 방법으로든 계속 공부하지 않으면 새로운 그림을 그릴 수 없다고 생각한다."
- 학교를 그만둘 당시 가족이나 친구들의 반응은 어땠나?"엄마 아빠의 교육방식은 '믿어주는 것'이었다. 특히 아빠는 공부나 피아노, 미술 모두 억지로 강요해서 시키신 적이 없었고, 선택은 나에게 맡기되, 책임이 따른다는 것을 가르쳐주셨다. 학교를 못 다니겠다고 했을 때도 선택을 존중해주셨는데, 아마 속으로는 속상하셨을 거다. 엄마도 걱정이 많으셨다. 내가 스트레스 받을까봐 앞에서 말씀은 못 하셨지만 정말 걱정이 많으셨다. 내가 맏이라 처음 키워보는 자식이었기에 부모님도 고민이 많았고 나도 내 진로를 얘기할 길이 없어 방에서 의미 없이 그림만 그릴 때도 많았다. 그래도 한 번도 앞에서 큰소리 내지 않으시고 믿어주셔서 지금도 감사하게 생각한다."
- 학교를 그만둔 게 작품 활동에 어떤 영향을 미쳤나?"좀 더 열심히 일하게 됐던 것 같다. 돌아갈 곳이 없으니 일이 들어오면 최대한 열심히 재밌게 했었고, 프로젝트도 더 집중할 수 있었다."
- 지금도 그 결정을 후회하진 않나?"후회하지 않는다. 그 결정들이 모여서 지금의 내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되돌리고 싶지 않다. 돌아가도 똑같은 선택을 했을 거다."
- 대기업과의 작업, 제품 디자인, 강연, 책, 영화 포스터, 개인전 등 활발한 활동을 하는 것 같다. '전방위 그림 작가'라는 별칭도 있던데, 프리랜서로 일하면서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잡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여러 작업을 할 수 있었던 비결이 있나?"사실 운이 좋았다. 처음 독립출판물에서 일이 들어온 것도, 그 뒤에 일들이 잘 이어진 것도 운이 좋아서라고 생각한다. 일이 들어온다는 것 자체가 좋아서 재밌어 보이는 일들은 가리지 않고 했다. 일이 들어오지 않을 때는 일을 만들어서 하기도 하고, 다음 일을 기다리며 개인작업에 매진하기도 했다. 여러 작업을 할 수 있는 비결이라기보다는 기본적으로 이 일 자체가 작업에 대한 애정이 없이는 할 수 없는 것들이라 재밌게 작업하다 보니 다양한 기회들을 많이 접할 수 있었다."
- 일반 직장에 다니지 않고 프리랜서로 활동하면서 불안했던 적은 없나?"지금도 불안하다. 프리랜서는 다 똑같은 마음일 거다. '이번 달은 일이 있지만, 다음 달은 어쩌지, 다다음 달에 일이 안 들어오면 어떡하지'라는 생각은 지금도 한다. 다만 쉬는 텀이 없도록 일을 찾아서 하는 편이다. 일이 없는 달에는 개인 작업에 집중해서 포트폴리오를 만든다든지, 책이나 영화를 보며 다음 작업을 구상한다. 작업을 구상하는 일이 쉬는 거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새 작업을 생각하다 보면 '다음에 좋은 작업으로 재밌는 일 하면 되지' 하는 생각이 들어서 불안함도 줄어든다. 작은 불안감들은 일을 하는 데 있어 원동력을 주기도 하지만 불안함에 잠식되면 일의 리듬 자체가 깨져버려서 되도록이면 좋은 방향으로 생각한다."
"정말 하고 싶다면 길은 만들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