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왈샤 호수의 잉어들. 수많은 잉어들이 서로 상처 입히지 않고 먹이를 받아먹고 있다.
송성영
우리는 다시 걸음을 옮겼다. 힌두사원 근처에 거대한 소 한 마리가 어슬렁거리고 있었고 사원 바로 앞 호수 가에서는 팔뚝만한 잉어들이 사람들의 발밑까지 몰려들고 있었다. 그 앞에서 흰 옷을 입은 힌두교 노인이 잉어들에게 먹이를 주고 있었고 원숭이 한 마리가 그 주변을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녀석은 계단 가까이로 몰려든 잉어들을 노리는 듯 했다. 하지만 녀석은 저리 가라는 노인의 손짓에 별 성과 없이 군침만 흘리고 돌아선다.
물고기에게 먹이를 던져 주고 있는 힌두 노인에게서 문득 인도의 창조신 마누의 자비심에 은혜를 갚은 물고기가 떠올랐다. 인도의 창조 신화에 보면 마누에게 세상의 종말로부터 살아남을 방도를 알려준 존재가 바로 물고기라 전해져 오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이곳 리왈샤에서 처럼 오래된 힌두사원 근처에는 살이 포동포동한 잉어의 연못을 종종 볼 수 있다. 저 힌두 노인은 물고기들에게 자비를 베풀게 되면 그만한 대가를 받을 것이라는 창조 신화 속의 믿음을 갖고 있는지도 모른다.
잉어는 한국의 사찰에서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사찰의 목어들 대부분이 잉어의 모습을 띠고 있기 때문이다. 당나라 때 불경을 구해 인도에 다녀와 기행문 '대당 서역기'를 남긴 현장법사. 현장법사에게는 수많은 일화가 전해 내려오고 있다. 그중에 다음과 같은 목어 이야기가 있다.
현장법사가 인도 순례를 마치고 고국으로 돌아오는 도중 어느 한 집에 머무르게 된다. 때마침 그 집에 큰 우환이 있었다. 새로 맞이한 아내가 남편이 사냥을 떠난 틈을 노려 전처소생의 갓난아기를 강물에 던져버렸던 것이다. 남편인 집 주인은 이 사실을 까마득히 모른 채 죽은 아들을 극락으로 인도할 천도재(薦度齋)를 올리고 있었던 것이다.
집 주인은 현장법사가 천도재를 도와줄 것으로 믿고 온갖 음식으로 대접했다. 하지만 현장법사는 단지 물고기가 먹고 싶다며 강에서 큰 물고기를 잡아오라고 했다. 집 주인이 잡아온 물고기의 배를 가르자 잃어버린 아들이 나왔는데 신기하게도 그 때까지 살아있었던 것이다. 물고기가 아기를 보호 했던 것이다.
집 주인은 자신을 희생하고 아들을 살려준 물고기에게 은혜 갚을 방도를 현장 법사에게 물었다. 현장 법사는 "나무로 물고기 모양을 만들어 달아 두고 재를 올릴 때마다 두드리시오."라고 말했다. 그 주인은 현장법사가 일러주는 대로 했고 그것이 목어의 유래라고 한다.
리왈샤의 잉어들은 밤에는 좀 더 깊은 호수 안쪽으로 들어가 펄떡펄떡 수면위로 뛰어오르곤 한다. 낮에는 사람들 곁으로 다가와 입을 뻐금거린다. 노인이 먹이를 던져 줄 때마다 수많은 잉어들이 뒤엉켜 달려들고 있지만 비닐이 심하게 벗겨져 있거나 상처 입은 녀석들은 눈에 띄지 않는다.
먹이를 받아먹겠다고 입을 쩍쩍 벌리고 달려들고 있지만 사람과는 달리 서로에게 날카로운 지느러미를 세워 상처를 입히지 않고 있다. 만약 다른 동료들을 헤쳐 가며 모두가 자기 자신만 배불리 먹겠다고 날카로운 지느러미를 곧추 세우고 달려든다면 서로 깊은 상처를 입게 될 것이었다.
나는 이곳 리왈샤에 오기 전 북인도 코사니 근처의 중세기 때 지어진 힌두사원 앞에서 자맥질하고 있는 큼직한 잉어들을 보면서 낚시의 손맛을 떠올렸었다. 나는 오랜 세월동안 낚시를 즐겨왔다. 낚시 바늘에 물려 파닥거리며 몸부림치는 물고기의 쾌감을 느껴왔다.
낚시 바늘에 걸려 나오는 팔뚝만한 잉어의 쾌감을 떠올리는 순간, 내면에서 질책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너는 입버릇처럼 폭력을 거부하고 평화와 자비를 말하고 있지만 너야말로 평화와 자비를 논할 자격이 없다. 네가 낚시를 통해 쾌감을 느낀다는 것은 폭력을 즐기는 것이나 다름없다. 네 안에는 낚시 바늘에 걸린 물고기들의 비명소리로 가득 차 있다. 살생의 악업이다. 다른 생명의 고통을 즐겼던 그 폭력적인 악업이 너무 많이 쌓여 있어 그동안 네가 어리석고도 탐욕스런 분노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단지 나의 쾌감을 위해 이유 없이 죽임을 당한 수많은 뭇 생명들의 증오심이 내 안에 가득하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그 악업은 나를 해치고 나와 가까운 누군가를 알게 모르게 해칠 것이었다. 그럼에도 이유 없는 살생을 쉽게 멈추지 못하는 것은 그만큼 악업이 깊기 때문이었다.
다시 내면의 소리가 들려왔다.
"낚시 바늘에 걸려 고통에 몸부림치는 물고기로부터 쾌감을 느껴가며 기어코 손아귀에 쥐고 싶은 것이 탐욕의 속성이다. 그 탐욕을 움켜쥐는 순간 악업이 뒤따라오는 법, 하지만 뭇 생명의 소중함을 저버리지 않고 자비를 베풀면 그 만큼 고통에서 벗어나 네 안에 평화가 깃들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너의 악업은 하나 둘 소멸 될 것이다."래미와 헤어져 숙소로 돌아오는데 리왈샤 마을을 내려다보고 있는 거대한 불상, 파드마 삼바바가 내게 이렇게 말하는 것만 같았다.
"너를 고통스럽게 만들고 있는 악업들은 탐진치(탐욕스럽고 분노하고 어리석음)의 결과물인 것이다. 거기서 벗어나지 못하면 고통의 수레바퀴는 계속해서 굴러갈 것이다."이곳 리왈샤 마을 사람들을 괴롭혀 왔던 악귀, 요괴들을 물리쳤다는 성자, 파드마 삼바바. 어쩌면 그가 물리쳤다는 요괴는 고통의 원인, 탐진치 였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파드마 삼바바는 고통으로 몸부림치는 이곳 마을 사람들에게 탐진치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을 설파했을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