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책 쓰는 선비 술 빚는 사대부> 책표지.
담앤북스
종가 음식에 호감을 가진 사람들이 많은가 보다. 글을 쓰자고 찾아보니 여러 권이 보이는 것이 말이다. 하필 이 책들을 권하는 이유는 '책 참 잘 썼다' 고맙게 읽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종가 내림음식을 전통 속에만 묻어두지 않고 사업으로 대중화한 사례, 즉 종가(음식)과 우리 전통 미래까지 제시하고 있는 책이기 때문이다.
몇 년 전 윤두서 관련 책에서 해남 윤씨 집안의 염전 사업에 대해 읽었다. 우리에게 눈빛이 매섭고 강렬한 초상화로 유명한 해남 윤씨 윤두서는 윤선도의 증손자이자 정약용의 외증조부다. 해남 윤씨 집안은 해남을 비롯한 근방에서 큰 일가를 이루고 살았는데, 집안이 염전 사업을 한 이유는 굶는 날이 더 많은 배고픈 이웃들을 위해서였다는 내용이었다.
누구든 필요한 사람은 곡식을 퍼가라고 큰 뒤주에 곡식을 늘 채운 후 문을 열어뒀다는 류이주 종가(운조루)이야기나, '100리 안에 굶어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며 해마다 수확하는 3천석 중 2천석을 남에게 베풀었다는 경주 최씨 부자 이야기는 언제 읽어도 감동이다. 이런 두 집안 이야기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해남 윤씨 집안 염전 이야기는 매우 신선했다.
옛날 부자들은 제사나 잔치 등에 음식을 충분히 장만해 집안과 전혀 상관없는 사람들도 배불리 먹게 했단다. 재산을 가문이나 후손 영달에만 쓰지 않고 사회 환원을 실천했던 이들 집안들은 더했을 것이다. 이들 집안들은 어떤 음식들을 즐겨 먹었으며, 어떤 내림음식들이 있을까? <요리책 쓰는 선비 술 빚는 사대부>(담앤북스 펴냄)를 선택한 이유 중 하나다.
국에 밥을 마는 '국말이'는 이런 제사를 지내고 난 음식을 제사에 참석한 사람과 마을 사람들이 함께 효율적이면서도 맛있게 나눠 먹는 방법으로 탄생했을 것이다. 백일헌종택의 국말이도 제사 지낸 후 그 음식을 함께 나눠 먹는 데서 유래했다. 백일헌종가 국말이는 밥 위에다가 고사리, 콩나물, 시금치, 숙주 등 나물을 얹은 다음, 끓인 육수(소고기국)를 부어 완성한다. 육수는 소고기, 파, 무, 대파, 다시마를 넣어 끓인다. 소고기는 양지를 사용한다. 윤순종 종부는 시집을 온 후 가장 많이 한 일이 제사를 지내고 국말이를 만들어 낸 것이라고 한다. 종부는 이 국말이가 일제치하에서도 장군 집안의 전통을 유지하게 해주고, 한국전쟁이 일어났을 때도 자주 집안임에도 한사람도 다치지 않게 해 주었다고 한다. 종가의 후한 인심은 가울 벼농사 타작에서도 읽을 수 있다. 백일헌종가는 한국전쟁 전까지만 해도 천석 이상의 벼농사를 지었다. 종가에서 타작을 하고 난 다음, 마을 사람들은 이미 타작을 한 종가의 볏단을 다시 털었다. 그렇게 타작을 한 볏단을 털면 나락이 열 가마니 이상 나왔다는 것이다. 종가 어른들이 일부러 벼 이삭을 완전히 털지 않도록 했기 때문일 것이다. (논산 백일헌종가 국말이)책은 ▲류이주 종가의 내림간장으로 만들어내는 소박한 밥상 ▲중요무형문화재인 경주 최씨 집안의 교동법주와 안주들 ▲해남 윤씨 종가의 비자강정 ▲화합을 다지는 매개 역할을 하는 봉화 충재 종가의 동곳떡 ▲독립운동가 안희제가 한보따리 들고 다니다 배고픈 독립군들과 나눠 먹었다는 의령 백산 종가의 망개떡 ▲가난한 이웃을 위해 심고 가꾼 나무 열매 도토리로 죽과 음식을 만들어 이웃과 나눠 먹으며 굶주림과 고통을 이겨낸 사연의 영양 석계종가 도토리죽 ▲'일꾼들의 밥상이 가장 화려해야 한다'며 일꾼들을 위해 여러 가지의 떡과 보양음식들을 장만해 대접했다는 강릉 명숙공종가의 질상과 못밥 ▲일제강점기 일본 바둑을 눌러 민중들의 울분을 달래줬다는 바둑 기인 노근영 집안에서 바둑 미생들을 위해 준비한 사초국수 등 43 종가의 음식들을 '먹 치레'와 '술 치레'로 나눠 소개한다.
이야기마다 종가 시조나 중요인물에 대해 녹여 썼는데 뒤에서 다시 2쪽을 만들어 별도로 소개한다. 그래서 우리나라 종가기행과 전통음식기행, 역사인물 기행을 각각 완벽하게 하고 있다는 느낌이 강했던 책이다. 2014년 6월부터 2016년 2월까지 전국 종가를 취재, 영남일보에 격주로 연재한 글을 바탕으로 수정·보완해 발간한 책이라고 한다.
<종가를 지켜온 종부의 손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