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책 쓰는 선비 술 빚는 사대부>(지은이 김봉규 / 펴낸곳 담앤북스 / 2016년 7월 27일 / 17,000원)
담앤북스
<요리책 쓰는 선비 술 빚는 사대부>(지은이 김봉규, 펴낸곳 담앤북스)는 점차 희소해져 그 의미가 더해지는 명문가, 대종가와 내로라하는 가문을 통해 혈통처럼 이어지며 전승되고 있는 이런 요리와 저런 술로 차린 만첩반상 같은 내용입니다.
의·식·주, 사람이 사는데 있어 꼭 필요한 세 가지를 일컫는 말입니다. 이 셋 중 없어서 안 되는 하나를 꼭 꼽아야 한다면 당연 식, 먹는 것이 될 것입니다. 옷? 춥고 부끄러울지는 몰라도 벌거벗고 살아도 당장 죽지는 않습니다. 집? 많이 불편할지는 몰라도 집이 없어도 당장 죽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먹을 것은 그렇지 않습니다.
며칠만 굶으면 당장 죽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사람들은 다른 것들에 비해 먹을 것에 대한 부정과 부조리에 더욱 민감하게 반응합니다. '먹는 것 같고 장난치는 놈들은 가만 둬서는 안 된다'고들 합니다.
태어날 때부터 소위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재벌가 사람들 중에서, 먹고살기 위해 일하는 사람들을 옛날 하인 다루듯 마구 대했다는 소식이 몇 건 있었습니다. 먹는 것 같고 장난치는 인간도 내버려 둬서는 안 되지만, 먹고 살기위해 일하는 사람을 무시하는 인간 역시 가만둬서는 안 되는 이유는 먹는 게 곧 사는 만큼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마음 배부르게 하는 강릉 명숙공종가에 차려지던 질상이런 세태 탓인지,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이런 음식과 저런 술중에서 가장 마음을 따뜻하게 하고 배부르게 하는 음식은 '강릉 명숙공종가'에서 차려지던 '질상'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질꾼들을 위해 차려 내는 질상은 종가에서 차려 내는 음식상 중 가장 풍성하고 화려했다. 판례가 있을 때는 판례떡까지 더해져 더욱 풍성해진다. 고된 농사일을 일단락한 뒤 기력을 보충하고 여름을 건강하게 나도록 보양식으로 차린다. - 196쪽질꾼이란 집집마다 추출돼 품앗이를 함께 하는 일꾼들을 일컫는 말이고, '판례'는 나이어린 일꾼이 자라서 어엿한 어른 일꾼으로 인정받는 의식입니다. 판례는 일꾼 성인식인 셈이고, 이때 하는 떡이 판례떡이라고 합니다.
명문가로 전해지는 종가나 가문 중에도 나와 내 식구만 잘 먹고 잘 입으면 그만인 사람이 장손으로 대를 이어가던 때가 분명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 집안에서 전해지는 음식은 제아무리 오래 이어지는 좋은 음식이라 해도 어디까지만 자신들만을 위한 천박한 먹을 것에 불과할 것입니다.
씨를 뿌리고 남은 볍씨를 빻은 쌀가루에 쑥과 호박, 밤, 대추, 곶감 등을 넣어 만드는 씨종지떡, 봄에 부화해 자란 영계에 인삼, 대추, 감자, 호박, 수제비 등을 넣어 만드는 영계길경탕, 영계삼계채와 포식해, 질꾼들이 모내기를 할 때 차려내던 못밥이 얼마나 맛나고, 영양학적으로 얼마만한 가치를 가지고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