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블T의 일반인 대상 서바이벌 프로그램 ‘뷰티워?피부의 여왕’ 출연 당시 모습.
박혜림
"리서치 업무를 비롯해 번역, 보고서 검토, 언론접촉 등 대외홍보까지 온갖 잡다한 일은 다 했던 것 같아요. 어느 날 눈 상태가 나빠져 검사했더니 '황반원공'이라는 거예요. 당장 수술을 해야 하고 2~3개월은 절대안정을 취해야 하는 상황이라 회사를 그만둘 수밖에 없었어요."
서른 두 살의 미혼여성, 직장도 없고 남은 건 병든 몸뿐이었다. 2010년 6월, 수술 후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또다시 진로 고민이 시작됐다.
책을 읽을 수도 운동을 할 수도 없었던 상황, 케이블TV에서 일반인을 대상으로 하는 서바이벌 프로그램 '뷰티워–피부의 여왕' 지원자 모집 광고를 보곤 불쑥 용기가 생겼다. 셀카로 찍은 프로필 사진을 올렸더니 제작진으로부터 연락이 왔고 한 달간 매주 2명씩 탈락하는 와중에 최종 3인에 오르게 됐다.
"그 동안 제가 살아왔던 공동체와는 전혀 다른 사람들,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신세계를 경험할 수 있었죠. 그리고 당시 바닥상태였던 자신감이 회복되는 계기가 됐던 것 같아요. 그때 통번역업계로 돌아가 보자는 자신감도 함께 생겼어요."통번역사를 채용하는 곳마다 지원서를 제출했고 그 중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위원회가 있었다. 몇 십 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한 국제규모의 행사인 만큼 경쟁은 치열했고 2번의 서류심사를 거쳐 최종 선발된 10명의 지원자들 중 까다로운 인터뷰를 거쳐 박씨가 최종합격 했다. 실현 불가능할 것 같은 목표라도 일단 발을 떼놓고 보면 기회는 찾아온다는 사실을 실감했다.
2010년 12월말 유치위에 들어간 이후 해외출장의 연속이었다. 입사 3주 만에 떠난 1월 중순 첫 이탈리아 출장, 충분히 적응할 시간 여유가 없었던 터라 첫 통역을 마친 후 특임대사로부터 '최악'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이후에도 통역마다 어떤 점이 잘못됐는지 지적 받고 깨지는 일이 다반사였다. 한 달의 절반은 해외에서 보냈고 출장이 없는 날엔 통번역 감각을 찾기 위한 스터디로 쉴 틈이 없었다. 개최지 결정까지 가장 집중해야 할 행사 중 하나인 2011년 4월 런던 스포츠어코드(SportAccord)에서 박씨는 자신의 한계를 깨는 계기를 맞게 된다.
30개국 돌며 평창동계올림픽 유치위 활동... 또다시 가시밭길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