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규가 닭뼈로 육수 내서 만들어준 쌀국수. 먹고나서 곧바로 감자튀김을 했다. 제규는 식구들을 '사육'하기로 작정했나 보다.^^
배지영
"엄마, 미용실 문 닫았어요!"제규는 밤마다 허탕을 치고 왔다. 학교 끝나고 장 봐서 집에 오면 오후 5시 40분쯤. 갖가지 음식을 해서 식구들(과 친구들) 먹을 저녁밥을 차리면 1시간이 훌쩍 지나간다. 맛있게 먹고, 그릇을 식기세척기에 넣은 다음에 부엌을 정리하면 어느새 오후 8시, 제규는 잽싸게 나갔다. 아파트 정문에 있는 미용실로 갔다. 불은 이미 꺼져 있었다.
제규는 낭랑 18세. 근사할 때지만 더 멋져 보이고 싶은 나이. 저녁밥 먹고 나서는 헬스클럽에 다녔다. 두 달만. 성실하게 다니는 편은 아니라서 나는 "돈 아깝다"는 잔소리를 했다. 제규는 이모부한테 전화해서 "아령이요, 안 쓰시면 저 주세요"라고 했다. 밤마다 혼자서 '홈 트레이닝'을 한다. 샤워하기 전에 거울로 근육을 살피면서 머리가 길다고 푸념했다.
"제규야, 오늘 학교 끝나고 집에 친구 데려 올 거냐?""혼자 가는데요.""그러면 저녁밥 하지 마. 너 학교 간 뒤에(제규는 혼자 밥 차려먹고 오전 7시 반에 카풀버스를 탐) 아빠가 국도 끓이고 반찬도 해 놨거든. 미용실 갔다 와."지난 목요일 오후, 나는 제규에게 전화를 했다. 집에 온 제규는 손 씻고, 옷을 갈아입은 다음 침대에 벌러덩 누웠다. 와이파이를 켜고 두 손으로 스마트폰을 떠받들었다. 노래를 들으면서 웹툰을 보는 청소년에게 잔소리 하는 건 무모한 행동. 나는 도전해야 했다. 제규의 외모가 덥수룩한 머리카락 때문에 가려지면 안 되니까.
제규는 "10분만 더요"라면서 버티기에 들어갔다. 나는 상냥하게 "꽃차남도 데리고 가서 깎고 와"라고 '혹'을 붙여줬다. 심심해하던 꽃차남은 제 형 방으로 가서 "형형, 미용실 언제 갈 거야? 지금 갈 거 아니야?"라고 조르기 기술을 썼다. 결국, 1일 5회 이상 티격태격 싸우며 무예를 익히는 '의좋은 형제'는 집을 나섰다.
"원장님한테 꽃차남 먼저 '투 블록 컷'으로 해달라고 했어요. 머리 깎는데 꽃차남이 계속 움직였어요. 그러니까 시간이 많이 걸리잖아요. 미용실에 손님 없는 게 다행이지. 나는 금방 끝나는데, 꽃차남은 지루하다고 나갔어요. 놀이터에 친구가 있더라고요. 둘이 안다고 인사하는 거를, 내가 확실히 확인했어요."
뭔가 만들려는 자세... 어찌 아빠를 쏙 닮았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