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 1학년, 꽃차남이 쓴 일기금, 토, 일 중에서 가장 재밌는 일을 골라 쓰겠다던 꽃차남은 엄마가 수술한 얘기를 썼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 알게 된 한 가지. 사람은 죽으면 다시 못 만나고 사람들 가슴 속에만 남는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엄마 죽을까 봐 걱정했다.
배지영
"제규야! 미안한데, 아빠는 일 있어서 나가야 하거든. 네가 엄마랑 있으면 안 돼?"토요일 오전 8시, 죽을 끓이고 난 남편이 말했다. 주말마다 나가서 노는 제규는 난처한 얼굴로 "지금 밖에서 주형이(친구) 기다려요"라고 했다. 1분쯤 지났나. "알았어요. 못 간다고 할게요"라고 하면서도 거울을 보고 옷을 입었다. 자식에게 짐이 되다니, 절대 원하는 바가 아니다. 나는 최대한 명랑한 목소리로 괜찮으니까 놀다 오라고 했다.
꽃차남은 친구 시후네집 가고, 나는 동생 지현을 만나서 치과에 갔다. 선생님은 뾰족한 걸로 내 입술과 턱을 찌르면서 아프냐고 물었다. 어금니 수술은 신경과 연결되어 있어서 묻는 절차라고 했다. 아팠다. 찢어진 입술도 아팠고, 드릴(또는 망치)로 뭔가를 박아놓은 어금니 자리도 아팠다. 선생님은 인상을 못 펴는 내게 "수술 잘 됐어요"라고 했다.
구시대의 산물인 통금 시간. 우리 집에는 있다. 토요일에는 오후 6시 전에 들어와서 저녁밥을 먹어야 한다. 식구는 달랑 네 명, 그 중에서 성별이 다른 한 사람은 <무한도전> 열성팬. 본방 할 때 밥상 차리면 단식을 해버리기 일쑤다. 제규와 남편은 보통 통금 시간 직전에 온다. 그날 제규는 오후 3시에 왔다. 연두부와 바지락을 사들고서.
"엄마, 먹고 싶은 거 있어요?" "없는데.""뭐라도 먹어야죠. 먹기 싫다고 안 먹으면 어떡해요?" 우리 엄마 조팔뚝 여사도 임플란트를 했다. 엄마는 수술 끝나고 곧바로 집에 와서 큼지막한 상추쌈을 먹었다고 한다. 그런 괴력의 식성을 가진 사람의 딸로 태어난 나는 끄덕 하면 입맛을 잃었다. 가마솥 뚜껑을 열자마자 풍기는 밥 냄새가 싫다고, 돼지고기 누린내가 싫다고, 장마철 냄새 때문에 머리가 아프다고, 갖은 핑계를 대고는 안 먹었다.
제규도 어릴 때는 까다롭고 입이 짧았다. 나는 "크면, 어차피 혼자서 먹잖아"라며 초등학교 3학년 때까지 밥을 먹여주었다. 남편은 숟가락이 비행기인 것처럼 "위이잉" 효과음을 내면서 떠먹였다. 그러니 제규는 젓가락질도 제대로 못 했다. 스스로 밥 하면서부터 거짓말처럼 젓가락질이 발라졌다. 무슨 음식이든 가리지 않고 잘 먹는 청소년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