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중또박또박 이야기하는 중
이희동
아이들과 함께 스크린도어에 붙여져 있는 글을 읽고, 직접 추모의 글을 포스트잇에 써 붙이고 있자니 어떤 카메라맨이 다가왔다. 공중파 PD였는데 김군과 관련된 프로그램을 제작하고 있다며 나와 아이들의 인터뷰를 부탁했다.
어느 아버지가 자식들에게 김군의 비극을 직접 보여주기 위해 평일 낮에 구의역에 왔으니 아마도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그림이었겠지.
이어지는 인터뷰. 까꿍이는 가르쳐주지도 않았는데 아까 잠깐 아빠에게 들은 설명만으로 고인이 된 김군에게 그럴듯한 영상편지를 만들었다. 하늘나라에서는 더 이상 죽지 말고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다며 1학년답게 편지 마무리를 했다. 이곳에 아이들을 데리고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인터뷰를 마친 뒤에도 나는 꽤 오랜 시간 구의역을 떠나지 못했다. 아이들은 들어오는 전철을 볼 때마다 이제 타면 되냐고 물었지만 난 차마 발걸음을 뗄 수 없었다. 누가 김군을 죽음으로 몰아갔는지, 나는 과연 공범이 아니었는지 스스로에게 묻고 있었다.
이미 많은 이들이 지적했듯이 김군의 사망은 우리 사회의 여러 가지 모순이 중첩된 결과이다. 소위 흙수저로 태어나 불평등이 심화된 사회 속에서 인생은 원래 그런 거라며 큰 희망 없이 오늘 하루 무사히 보내는 걸로 만족하는 삶. 그리고 그것을 조장하는 사회.
문제는 내가 그와 같은 사회의 기성세대로서 책임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말이나 글로는 그런 사회를 변화시켜야 한다고 열심히 떠들어대지만, 나 역시 내 눈 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부조리한 현실에 대해 으레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었기 때문이다.
김군의 어처구니없는 죽음을 보면서 개인적으로 가장 먼저 떠올린 건 하청에 하청을 주는 사회 시스템이었다. 내가 물류업에 몸담고 있을 당시, 그것은 당연한 관례였다.
물론 그렇게 되면 화물 노동자가 가지고 갈 수 있는 금액이 적어짐에도 불구하고 많은 물류업체들이 그렇게 매출을 돌려가며 이익들을 나눠가졌고, 일부 간부들은 자신의 명의로 세운 회사를 그 시스템 속에 포함시켜 이윤을 사유화 했다.
그리고 많은 직원들은 그런 것들을 보고 배우며 내가 회사 CEO가 되지 않는 이상 그런 협력사 하나 차리는 것을 최종 목표로 삼았다. 최근 많은 이들이 법조계의 전관예우를 비난하지만 이미 우리 사회는 그것에 익숙해져 있다.
혈연, 지연, 학연으로 묶여있는 사회 관계망 속에서 하청을 받을 수 있는 협력사를 차린다는 것은 불법이 아니라 능력의 문제일 뿐이다. 그러니 그 관계망 속에 들어올 수 없는 김군 같은 이들은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며 그 말도 안 되는 죽음을 맞이할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