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티 쯤은 애교짜니는 신발, 이불, 방충망 뭐든 물어뜯지요
정가람
몇 가지 사연만 늘어놓자면, 현관에 놓인 신발 여러 켤레 해 먹은 것은 기본으로 빨래줄에 널어 놓은 옷 물어뜯기, 현관에 두고 간 택배 상자는 물론 내용물까지 찢어놓기, 널어놓은 솜이불 뜯어 마당에 솜으로 눈밭 만들기 등등.
앞발을 세워 달려들어 가족들과 손님들 옷을 찢은 것도 몇 번이나. 어릴 적부터 야금야금 뜯어놓은 현관 방충망은 '방충'의 구실을 잃어버린 지 오래.
흙 속에 코를 박고 흙냄새를 맡으며 땅속 벌레를 잡고 놀 수 있는 화단이 있고, 오르락내리락할 수 있는 계단과 빙글빙글 돌며 놀 수 있는 마당도 있고, 하루에 한번 이상 동네 이곳저곳으로 산책도 했지만 짜니는 수시로, 그것도 점점 더 맹렬하게, 잔디 뿌리가 무자비하게 끊어지게 땅을 파댔다.
뭔가 스트레스가 쌓인 개들이 땅을 판다던데, 잘해준다고 해도 짜니는 뭔가 불안하고 부족했나 보다. 눈치에 코치까지 봐야 하는 세입자는 방충망 수리를 시작으로 다음 봄엔 잔디도 사다 심어야 하나 걱정이 커져만 갔다.
그러다 결정적인 사건이 터지고 말았다. 1박2일 친정집에 다녀와 여느 때처럼 "짜니야!" 하고 부르며 대문을 열었는데, 짜니가 보이지 않는 것이다. 놀란 식구들이 짜니를 다급하게 불러대자 옆집에서 짜니가 담을 훌쩍 넘어 오는 것이 아닌가! 화단에 올라서면 아이들도 쉽게 넘을 수 있는 담이 짜니에겐 간식으로 소시지 먹기보다 쉬운 일이었다.
짜니, 담을 넘어 옆집으로!옆집엔 4~5년 된 소형견 한 마리가 살고 있었다. 그동안 담 위로 앞발을 올리고 서로를 쳐다보며 지냈다. 주로 짜니가 애정을 갈구했고, 옆집 개는 도도함으로 어쩌다 한 번씩 담 옆으로 와 짜니를 상대해줬다. 옆집 개와 놀고 싶은 욕구와 몸집이 점점 커지자 짜니는 식구들이 집을 비운 틈을 타 옆집으로 행동반경을 넓히고 만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