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꿍이가 그린 우리 가족자신이 첫번째다. 자존감이 세다는 좋은 증거다
이희동
"까꿍아, 넌 커서 뭐가 되고 싶어?"
"화가.""화가? 왜? 전에는 요리사 될 거라고 했잖아.""아냐. 이젠 그림 그리는 게 더 좋아. 그림을 그리면 상상도 할 수 있잖아."앞선 통계를 보면 그래도 아이에게 꿈이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막상 아이에게서 또 '화가'라는 소리를 듣고 나니 아찔해졌다. 그 많은 직업들 중 하필 화가라니. 정녕 핏줄 탓일까? 나의 작은 고모도 화가요, 여동생도 화가인데 이제는 딸자식마저 화가가 꿈이라고 하다니.
그것은 하나의 데자뷔였다. 내가 어렸을 적 아버지는 나와 여동생을 붙들고 똑같은 질문을 하셨는데 축구선수부터 시작해서 파일럿, 대통령 등 꿈이 다양하게 바뀌었던 나와 달리 여동생은 줄곧 하나의 장래희망만을 고집했다. 바로 화가. 그리고 현재 나의 여동생은 화가로서 대학 강의도 나가고 있다.
나는 자신의 꿈을 기어코 이룬 여동생이 자랑스럽다. 녀석은 또래 중에서 그래도 꽤 알아주는 화가로서 꾸준히 작품 활동을 하고 있는 중이다. 옆에서 지켜본 바, 그림을 그리는 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개인전인데, 동생은 자기 돈을 들여 개인전을 여는 이들과 달리 지금까지 항상 갤러리에서 모든 비용을 책임져주며 먼저 그림을 걸고 싶다고 했었다. 그만큼 녀석의 그림이 경쟁력 있다는 뜻이겠지.
다만 문제는 화가가 되는 과정이다. 그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물론 어느 직업인들 쉽겠냐만은, 특히 화가는 자신이 투자하는 많은 시간과 비용에 비해, 그 성공 가능성이 다른 직업보다 현격히 낮은 편이다.
게다가 화가가 된다 한들 우리 사회에서는 밥벌이가 어렵다. 다행히 동생은 곧잘 그림도 팔고 강의도 나가는 등 수입을 올리고 있지만, 대부분의 화가들은 결국 그 꿈을 포기하거나 특정 수입이 없어 생활고에 시달리는 게 현실이다. 사회가 성숙돼 순수미술의 가치를 알아주면야 다행이겠지만, 현재 우리 사회는 먹고사는 것만 해도 빠듯하기에 그림을 그리는 것만으로 먹고사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그러니 아버지도 당신의 딸자식을 말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30년 전 멀쩡히 다니시던 은행을 그만두고 붓을 잡겠다던 당신의 여동생은 자신이 아무런 경제적 도움을 주지 못하는 이상 아무 말할 수가 없었지만, 아버지는 자신의 딸이 그림을 그린다고 했을 때 완강히 반대하셨다. 딸자식이 여동생처럼 고생하는 걸 보기 싫다는 이유였다. 물론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고, 동생이 고등학교 2학년 때 그림을 그리지 못하면 평생 아버지를 원망할 것 같다며 설득하자, 두 손 들고 마셨지만 어쨌든 아버지는 나의 여동생이 화가 되기를 꽤 오랫동안 반대하셨다.
그런데 지금 또 나의 딸, 아버지의 손녀가 화가 되기를 주장하고 나선 것이다. 물론 대부분의 아이들이 그렇듯 까꿍이의 꿈은 바뀔 가능성이 크지만, 여동생을 보며 한 번 놀란 입장으로서, 녀석의 일갈은 충분히 고민 대상이었다. 녀석이 진짜 계속해서 화가를 고집하면 어쩌지? 나도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반대해야 할까? 아니면 지금 아버지가 딸자식 보듯 묵묵히 지켜봐야 하나?
그래도 네 꿈을 펼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