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좀 물어봅시다
이준수
"자기야, 차가 산으로 가고 있어."
아내가 연신 재밌다고 사진을 찍어댔다. 정말이었다. 대로변을 달리고 있는데 내비게이션에선 차가 등고선을 질주하고 있었다. 어쩐지 내비 아가씨가 조용했었다. 평소 주정차 금지 구역이니, 신호 위반 단속 지역이니 하며 끊임없이 잔소리하는데 웬일인지 얌전했었다.
2년 동안 휴가도 없이 일했으니 파업하는 모양이었다. 농담은 거기까지였다. 하필이면 명절이라고 내려온 울산에서 말썽이었다. 고향이긴 하지만 새로 개발된 구획은 영 낯설었다. 별안간 목덜미가 움츠러들며 불안해졌다.
'언제부터 고장 났던 것일까?'
'과속 카메라가 있지는 않았을까?'
우선 바보 같은 기계를 껐다. 검게 변해버린 화면과 선명하게 부각되는 엔진음. 여자친구의 쌩얼을 처음 보았을 때 같았다. 분명 어느 정도 예상했지만 약간 당황스러운 기분. 2013년 11월 16일 신차 출고 후 최초로 기본세팅 상태로 운전하게 되었다.
안내 프로그램 없이 운전대를 잡은 건 면허시험장뿐이었다. 어쩌겠는가? 감각을 믿고 가는 수밖에. 바깥 차선에 붙어 아스팔트 위 방향 기호에 따라 느릿느릿 운행했다. 와이프는 신호등에 붙은 '직진 후 좌회전' 따위를 살피고, 단속 카메라 유무를 확인했다. 이십 분이면 충분한 거리를 오십 분 만에 왔다. 핸들을 얼마나 꽉 쥐었는지 손바닥이 얼얼했다.
'고작 내비게이션 고장 났다고 이렇게 피곤해지나?'
어른이 되고 나서 도구 의존증이 심해졌다. 몸으로 부딪히고 시간 들여가며 배우는 행위가 성가셨다. 도구를 쓰니 몸은 편한데 또 다른 안락함을 위하여 장비를 계속 구입해야 하는 형편이었다. 자발적 퇴화. 스티븐 호킹 박사가 '미래에 인간이 로봇에게 지배당하리라' 예언했는데 거짓이 아닐 수 있었다. 인류 생존의 위기감이 들 때마다 나는 '김담'을 떠올렸다.
그는 내가 아는 최고의 '길잡이'였다.
고장난 내비게이션 덕분에 '담이'가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