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곳> 구고신의 모티브가 된 송영수 부산지역일반노조 교육위원
민석기
송영수 위원은 2003년 21시간의 긴 수술 끝에 아내의 간과 조카의 신장을 받아 그가 말한 '평범한 길'을 다시 걸어나갔다. 수술 12년 뒤, 그의 병색은 모두 사라졌다. 대신 강한 어조의 경상도 사투리로 직언을 멈추지 않는 짱짱한 노동 운동가의 얼굴이 남았다.
1983년 처음 노동 현장을 찾은 날부터 지금까지 그는 노동자들과 부대꼈다. 100여 개의 노조를 만들며 때로는 실패하고, 때로는 승리라 부를 수 있는 성공도 거뒀다. 용역 파견 노동자, 마을 버스 기사, 환경 미화원, 사회복지사 등 노동조합에 가입하기 어려운 사람들을 모아 부산에서 전국 최초로 지역 일반 노조를 만드는 데 주도적으로 참여하기도 했다. 33년을 노동 운동가로 살아온 송영수 위원은 <송곳>을 어떻게 봤을까.
"<송곳>에 보면 구고신이 청소노동자의 산업재해(산재) 처리를 위해 동료를 설득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 중 한 운전기사가 함께 호소해주고. 그 밑바탕에 흐르는 건 휴머니즘, 인간애다. 인간을 물질화하는 시대에서 노동 운동은 휴머니즘으로 저항해야 한다는 걸 <송곳>의 구고신이 보여줬다."
송 위원이 구고신의 모티브가 된 인물이라는 사실이 회자되자, 주변에서 많은 연락을 받았다. 그는 "연락이 닿지 않았던 고등학교 동기도 전화로 '니가 맞냐'고 하더라. 노동자의 일상적인 삶이 그렇듯 특별한 삶이 아니라고 했다"고 말했다. 그는 구고신의 모델로 자신이 부각되는 건 옳지 않다고 여러 차례 말했다.
"(노동) 현장에서 이 시대의 문제를 고민하는 사람은 많다. (내가) 특출난 것도 아니고. 현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그냥 치열하게 사는 사람들이다. 구고신도 그런 사람들을 모아 만든 인물이다. 나만 부각되는 것은 쑥스럽다.""자기 연봉 깎아 '노조 가입하자' 설득한 사람도..."송영수 위원은 그가 만난 '송곳 같은 인간'들을 소개했다. 송 위원은 부산지역일반노조에 청소노동자들을 가입시킬 때 '한 사람'의 역할이 컸다고 회상했다. 송 위원에 따르면 그는 회사가 정부의 용역 지원 비용을 반절 이상 빼돌려 청소노동자가 열악한 대우를 받는 구조에 분노했다고 한다.
송 위원은 그 사람이 "현실적인 분노와 함께 전체 구조적인 모순에 스스로 눈을 뜨면서 청소노동자 조직화에 헌신했다"라고 말했다. 대개 밤 10시부터 업무를 시작해 새벽 늦게 까지 일하는 청소노동자에게 "노조하자"고 설득하려면, 늦은 밤부터 동이 틀 때까지 곳곳을 돌아다녀야 했다. 그 사람은 다른 청소 사업장에 노조의 필요성이 담긴 유인물을 뿌리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타 업체의 신고로 벌금형을 받고 회사에서 해고 당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후 그는 청소 노동자들을 모아 노조를 조직했고, 정부 지원 비용 100%를 노동자의 몫으로 되돌리는 데 성공했다.
케이블 방송 설치 기사 노조를 조직하는 데 위기를 겪었을 땐 '한 지점'이 나섰다. 송 위원은 "'1인당 얼마 줄고' 하며 노조 탈퇴를 요구하는 소장의 말을 거역한 거다. 그전까진 소장을 신으로 알던 사람들이었다. 이후 조직이 복원됐다"라고 말했다.
제2금융권 노동자들을 조직하는 과정에선 고액 연봉자였던 사람이 자신의 연봉을 깎겠다고 나서기도 했다. "함께 잘 살자"고 설득하기 위해 자신의 몫을 내놓은 '송곳'이었다. "(노조 조직화 참가자 중) 연봉이 가장 높은 사람이었다. 전체를 설득해 사장 반대 편에 서게 하기 위해 그렇게 결심한 사람이었다. 결국 전체 조합원을 모을 수 있었다"라고 송 위원은 회상했다.
그는 "자본이 노동자를 착취하는 과정에서 아무리 저항이 힘들어도 송곳 같은 사람은 삐져나오기 마련이다"라고 말했다. "팍팍한 노동자의 삶이 일상이듯, 이 부조리한 일상에 저항하는 작은 용기 또한 일상적으로 나온다"고 강조했다. 다만, 미디어가 이 같은 노동 문제를 다루지 않다 보니 '송곳'들의 목소리가 묻힐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어떤 탤런트가 불안 장애로 방송에서 하차한다는 이야기는 즉각 나온다. 하지만 산재 사고로 노동자가 몇 천 명이 죽는지, 계단으로 물건을 옮기는 노동자가 한 해 2200명이 죽는 이야기는 나오지 않는다. 언론 자체가 (노동 현실을 다룰 때) 비인간적인 것이다. 이러면 전체 사회의 시선도 비인간적으로 바뀐다. 많은 이가 (<송곳>을 통해) 내 안의 비인간적인 부끄러운 모습을 알아차리고 반성할 수 있는 계기를 찾았을 거라고 생각한다.""용기는 신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