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 집 마당에서 자라는 후박나무입니다. 사월부터 천천히 꽃을 피우고 오월에 열매를 맺고 여름 내내 온 마을 새들이 이 열매를 따먹습니다."
최종규
그리고, 한 가지를 덧붙입니다. 이윤옥씨는 책으로만 풀이름을 살펴보신 듯합니다. 풀이름을 책으로만 살피지 않고, 1930년대 한국 식물학자처럼 전국을 두루 다니면서 '시골말(방언)'을 손수 모아 보셔요.
왜냐하면, "창씨개명되지 않은 우리 풀이름"은 먼먼 옛날부터 시골에서 쓰던 풀이름이기 때문입니다. <조선식물향명집〉에 실린 풀이름이 '제대로 된 번역'인지 '엉뚱한 번역'인지 '고심한 흔적'인지 따지지 마시고, 손수 시골마을을 돌면서 풀이름을 모아 보시기 바랍니다.
이윤옥씨는 '봄까지꽃'이나 '코딱지나물꽃' 같은 이름을 들어 보셨는지요? 반론을 읽어 보니, 아무래도 처음 들으신 듯합니다. 그런데, 시골에서는 이런 이름을 흔히 씁니다. '쇠별꽃'을 두고도 식물도감에 나오는 이름보다 '콩버무리' 같은 이름을 널리 씁니다. 부디 책에 너무 기대지 마십시오. 일제강점기에 <조선식물향명집>을 엮은 뜻있는 한국 식물학자는 저마다 시골마을을 골라서 찾아다닌 뒤 바지런히 풀이름을 그러모았습니다.
'봄까지꽃'이라는 이름이 안 어울린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면 생각해 보셔요. 왜 '봄까치꽃'이라는 이름이 퍼졌을까요? 이해인 수녀님은 왜 '봄까지꽃'을 '봄까치꽃'으로 잘못 적은 시를 쓰셨을까요?
까치가 놀러 나온 / 잔디밭 옆에서 // 가만히 나를 부르는 봄까치꽃… (이해인-봄까치꽃) 시골에서 '봄까지꽃'이라는 이름을 쓰는 할매와 할배가 있기 때문에 이해인 수녀님은 이러한 풀이름을 들으셨으리라 느낍니다. 그런데 '봄까지'를 '봄까치'로 잘못 듣거나 생각하셨으니 이렇게 시를 쓰셨으리라 느낍니다. '봄까지꽃'이라는 이름이 없었다면 '봄까치꽃'처럼 이 풀이름을 잘못 쓸 일이 없습니다. 이를테면 "울릉도 호박엿"과 같은 꼴입니다.
울릉도에는 '호박엿'이 없었습니다. 요즈음은 "울릉도 호박엿"을 따로 곤다고도 하지만, 울릉도에서 '호박엿'을 곤 지는 얼마 안 되었습니다. 왜 그러할까요? 울릉도를 비롯한 한국 남녘 바닷마을에서는 먼 옛날부터 '후박나무 껍질과 열매'를 얻어서 엿을 고았습니다. 뱃사람이 뱃멀미를 하지 않도록 '후박엿'을 먹었습니다.
그렇지만, 섬과 바닷마을이 아닌 뭍(내륙)사람은 '후박나무'를 모르지요. 따뜻한 남녘 바닷마을에서만 자라는 나무인 후박나무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뭍사람이나 서울사람은 이를 '호박엿'으로 잘못 알아듣고는 이 잘못된 이름을 퍼뜨렸습니다. '봄까지꽃'이 '봄까치꽃'으로 잘못 퍼진 까닭도 이러한 얼거리하고 같습니다.
일본 식물학자가 붙인 이름으로 얼룩진 "창씨개명된 풀이름"뿐 아니라, "오늘날 한국사람 스스로 시골마을 풀과 나무를 제대로 몰라서 엉뚱하게 잘못 붙이는 풀이름"을 함께 살펴야 하지 않을는지요?
광대나물이 왜 광대나물인지 제대로 모르는 채 "일본 식물학자가 붙인 '부처자리'로 이름을 붙여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윤옥씨입니다. 한국 식물학자가 멀쩡하게 잘 지은 풀이름을 왜 "창씨개명을 시켜야 한다"고 주장하시는지 아리송합니다. 한국 식물학자가 제 나름대로 잘 빚은 '광대나물'을 쓰거나, 시골마을에서 널리 쓰는 '코딱지나물'이라는 이름을 쓸 노릇이지요.
일본말에 얼룩진 자국을 지우는 일은 틀림없이 뜻이 있습니다. 하지만 <조선식물향명집>을 깎아내리면서, 이 책에 나온 '참(사실)'을 비트는(왜곡) 일은 그만두시기 바랍니다. 한국사람 스스로 한국 식물학자를 깎아내리는 짓은 무슨 보람이 있을까요?
창씨개명된 우리 풀꽃 - 잘못된 이름으로 불리는 우리 풀꽃 속의 일제 잔재
이윤옥 지음,
인물과사상사, 2015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