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꾼보다 장사꾼이 더 많은 여름날 여주장 풍경(2015. 8. 10.)
박도
'다정(茤汀)'이 이야기 "여름장이란 애시당초에 글러서, 해는 아직 중천에 있건만 장판은 벌써 쓸쓸하고 더운 햇발이 벌여놓은 전 휘장 밑으로 등줄기를 훅훅 볶는다."<메밀꽃 필 무렵> 의 첫 문장처럼 내가 찾아간 한여름 여주 장도 더위로 한산했다. 우리는 장터 국밥집에서 푸근한 인상의 주모가 썰어주는 순대와 소머리국밥, 그리고 막걸리를 앞에 두고 다정이 얘기를 나눴다.
홍일선 시인은 2004년 여주 점동면 도리마을로 귀농했다. 그가 힘들게 농사짓는 것을 보고 김영현(소설가) 아우가 2014년 4월 그의 친구 겸 짐꾼 노릇을 할 수 있는 어린 당나귀 한 필을 사주고 가면서 이름까지 '다정(茤汀)'이라고 지어 주었다.
다정이는 2013년 1월 태생으로 이제 만 2년 6개월 지난 아직도 나이 어린 아씨 나귀다. 그의 고향은 이웃 강천 마을인데, 바보숲농원으로 오기 이전에는 송아지 밥을 먹고 자랐다. 홍 시인은 그에게 계속 송아지 밥을 사 먹일 수 없어 자기 농원 닭님들의 밥으로 주는 옥수수가루, 미강발효, 깻묵, 비지, 소금 등으로 특별히 다정이 밥을 만들어주었으나 한동안 먹지 않아 애를 태웠다.
전 주인은 나귀가 말을 듣지 않으면 채찍으로 때려주라고 말했다. 하지만 홍 시인은 차마 채찍을 들 수 없어 다정이에게 애소했다. 나귀는 IQ가 70~75 정도로 웬만한 사람의 말은 알아듣는다고 했다.
"다정아, 나는 너에게 송아지 밥을 사줄 형편이 안 된다. 네가 이걸 먹지 않으면 우리는 같이 살 수 없게 된단다."그런 뒤 한 이틀 굶기며 내 버려두자 다정이는 그제야 홍 시인이 마련해 준 밥을 먹기 시작했다. 아마도 자기도 지금 주인과 헤어진다는 것은 끔찍한 불행이 기다리고 있음을 감지한 모양이라고 했다. 곧 산과 들, 강둑에 풀이 무성하게 자라자 홍 시인은 다정이를 데리고 강둑으로 갔다. 그가 스스로 풀을 뜯어 먹게 함이었다.
"다정아, 원래 너희 조상들은 싱그러운 풀을 먹고 살았단다."하지만 다정이는 강둑의 풀에 한참 코를 벌름거리며 냄새 맡더니 고개를 흔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