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 숲 농원' 닭님들이 가족 단위로 나들이하고 있다.
박도
집안으로 들어가자 아니나 다를까 수백 마리의 닭님들이 농원 여기저기서 제 마음대로 뛰놀고 있다. 닭장 둥지에서는 '꼬꼬댁 꼬꼬' 암탉이 알을 낳았다고 주인에게 신고하는 소리도 들렸다. 정말 나는 오랜만에 닭들의 요란한 합창에 마치 60년 전의 유년 시절로 돌아간 느낌이었다. 그때 나는 이런 분위기 속에 살았다.
지난날 사람들은 닭과 소와 돼지 등 여러 가축과 더불어 살았다. '닭 우는 소리'는 곧 '생명체'를 뜻했다. 사람들은 닭 울음소리에 밤 시간을 가늠했고, 달걀은 귀한 반찬거리였으며, 조상의 제삿날에는 닭을 잡아 제상에 올렸다. 그렇게 사람과 더불어 살던 닭들은 그 언제부터 집안에서 점차 사라져 이즈음에는 마을에서 떨어진 양계장에서나 볼 수 있다.
몇 해 전, 한 양계장에 갔더니 수천 마리의 닭들을 기르고 있었는데, 그 규모가 어마어마했다. 자세히 살펴보니 양계장의 닭들은 자기 몸도 180도 회전할 수도 없는 좁은 철장에 갇혀 부리도 잘린 채 자동으로 배급되는 모이와 물을 먹으며 지냈다. 닭장에는 밤에도 환한 전깃불을 켜 두었는데, 이는 닭들이 잠자지 말고 많이 먹고, 알을 더 많이 낳으라는 인간의 이기심의 발로였다. 그런데 그 밀폐된 닭장 안은 온통 닭똥 썩는 냄새로 숨을 들이킬 수조차 힘들었다.
양계장에서 그렇게 자라는 닭인들 왜 스트레스와 병이 없겠는가. 양계장 농장주는 그것을 방지하기 위해 그들 사료에 온갖 항생제를 섞고 있음은 묻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일이다. 오늘의 우리는 그렇게 생산된 달걀을, 닭고기를 먹으며 살아간다.
그래도 닭장에 있는 암탉들은 선택받았다. 이즈음 수평아리들은 태어나자마자 거의 살처분된다고 한다. 돼지나 소들도 수컷은 이들의 신세나 비슷하다. 축산에도 자본의 논리로 가축들이 생산되고 있다. 최소의 투자로 최대의 이윤을 얻고자 사람들은 온갖 방법을 다 동원하여 가축들을 사육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