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청소년의 70%는 결손가정 혹은 극빈가정 출신입니다. 위기청소년 아버지 중 상당수는 알코올에 중독되면서 가정폭력과 가정해체 등을 일으킵니다.
조호진
그는 취객을 부축해서 여관에 들어갔습니다. 톨스토이의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에 나오는 천사, 헐벗은 채로 지상에 버려진 미하일처럼 그 취객은 천사였는지도 모릅니다. 취객은 그를 생명의 길로 인도했으니까요.
취객을 여관방에 누인 그는 탁자에 놓인 신문을 펼쳐 들었습니다. 그 신문에는 어떤 목사가 신장을 기증해 생명을 살렸다는 미담기사가 실렸습니다. 지금이야 신장 기증이 많이 알려졌고, 동참자도 많아졌지만 25년 전만 해도 매우 낯설었습니다.
그 기사를 읽은 그는 신장을 기증하고 싶어졌습니다. 그는 장기기증단체에 찾아가 "신장 기증을 통해 제가 지은 죄의 백분의 일이라도 갚고 싶습니다. 감옥살이를 한 더러운 몸이지만 신장 기증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라고 호소했습니다. 그리고 1991년 6월 13일 생명부지의 20대 청년에게 신장을 기증했습니다. 혈액투석으로 생명을 힘겹게 연장하던 청년은 그의 신장을 이식 받으면서 건강을 회복했습니다.
누가, 괴물을 만들었을까요?전과 11범인 그는 위험인물이었습니다. 재판부가 절도죄를 묻고도 부족해서 청송보호감호소로 보내 감옥살이를 더 시킨 것은 그 때문입니다. 괴물을 차단하기 위한 법적 조치입니다. 법으로 강력 조치하면 괴물이 차단될까요? 그가 속죄 인생을 결심한 것은 청송보호감호소에서 만난 여자 전도사 때문입니다. 그는 "여자 전도사가 저 같이 못난 놈에게 헌신적인 사랑을 베풀었다"고 말했습니다.
소년의 눈물을 외면하면 증오의 칼이 됩니다. 소년범 중에 1/3이 전과자가 되고 이들 중에서 사회를 충격에 빠트리는 소위 '괴물'이 나옵니다. 그는 괴물로 태어나진 않았습니다. 그도 한때는 그냥 소년이었습니다. 그런데, 인정사정 볼 것 없이 던지는 돌멩이에 피투성이가 되면서 괴물로 변했습니다. 그래서 여쭙고 싶습니다. 소년이 눈물을 흘릴 때, 돌을 던지기에 급급했던 우리에게는 아무런 책임이 없을까요?
그는 1·4후퇴 때, 남한으로 피난 내려왔습니다. 부모의 보호를 받지 못한 그는 떠돌이로 살다가 물건을 훔치기 시작했고 그게 버릇이 되면서 소년원과 교도소를 드나드는 법자 인생으로 살았습니다. 그를 속죄 인생으로 바꾼 것은 법이 아닙니다. 감옥도 돌맹이도 아닙니다. 심장판막증 환자였던 여자 전도사의 헌신적인 사랑이 그를 뉘우치게 했습니다. 소년범 시절에 그 여자 전도사를 만났으면 전과 11범이 되진 않았을 텐데….
"신장 기증 후, 경찰에 불려가지 않았어요!"신장 기증을 하며 새 사람이 되었지만 삶은 고달팠습니다. 50대 나이에 신문배달을 하고, 공공근로 등으로 살기란 쉽지 않습니다. 나이가 들었다고 신문배달 일거리가 끊기는 등 생계 위협이 그를 흔들었습니다. '왕년의 실력을 조금만 발휘해도 돈을 움켜쥘 수 있는데 왜 그렇게 구차하게 사는 거야, 어서 가자고 한 탕 털러~!', 하지만 그는 옛날로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몇 년 만에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힘없는 목소리로 전화를 건 그는 "최 국장, 미안하지만 돈 좀 보내줘. 며칠 굶었더니 너무 배가 고파!"라고 도움을 청했습니다. 그는 사흘을 굶다가 아내에게 도움을 청한 것입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은 아내는 바로 송금했습니다. 그에게 아내는 엄마 혹은 누이 또는 연인 같은 존재였습니다. 아내가 한 게 있다면 그분이 무너지지 않도록 최소한의 사회안전망 역할을 한 것입니다.
그는 말소된 주민등록증을 살려야한다고 과태료를, 신문배달해서 먹고 살아야 하니 중고오토바이 살 돈을, 생활비가 부족하니 돈을, 진갑기념 여행을 가게 경비 지원을 요청했습니다. 아내는 그가 좋아하는 돼지갈비와 탕수육을 사드렸고, 좋아하는 영화를 관람하게 해드렸습니다. 여기까지 읽으면 자칫 '염치 좋은 인간이네!' 하고 비난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분은 그런 분이 아닙니다.
그는 가난하고 못 배웠지만 자존심 강하고 깔끔한 분입니다. 요정에서 일하던 이복누나에게 학대 당한 아픔 때문에 술과 담배는 입에도 대지 않습니다. 그는 어떤 어려움에 처해도 손을 벌리지 않습니다. 도움을 청하는 유일한 사람이 아내입니다. 그는 신장을 이식해준 청년의 연락처를 알고 있었지만 그 어려운 상황에서도 도움을 요청한 적이 한 번도 없었습니다.
그에게 신장 기증은 삶의 기쁨이고 희망입니다. 그런데 신장 기증을 이유로 손을 벌린다? 그는 자신의 명예를 훼손하는 행위를 스스로 용납하지 않았습니다. 장기 기증한 지 10년째 되는 날, 아내에게 이런 소회를 밝혔습니다.
"오늘이 신장 기증을 한지 10년째 되는 날이야. 지난 10년을 되돌아봤는데 경찰서에 불려가거나 어떤 사건에 연루된 적이 한 번도 없었어. 속죄하며 살 수 있도록 도와줘서 고마워. 어려울 때마다 도움을 청했는데 한 번도 거절하지 않고 들어줘서 고마워 정말 고마워!"장례식을 부탁한 독거노인... 아내 "잘 보내드릴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