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529호실' 공방을 다룬 한겨레 1999년 1월 4일자 1면 기사. 당시 "529호실 문을 따고 들어가자"고 강경론을 편 박근혜 부총재는 국정원의 정치사찰 의혹을 제기했으나 그 근거를 제시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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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사무처는 다음 날인 1999년 1월 1일 "12월 31일 밤, 한나라당 의원, 보좌관, 당원 등 100여 명이 국회 정보위 529호실에 무단 침입해 기물을 부수고 국가 기밀문서를 탈취해 갔다"며 검찰에 고발했다. 당시 사건을 맡은 서울지검 남부지청장(현 남부지검장)이 박근혜 정부 '최장수총리' 정홍원이라는 사실도 흥미롭다.
한나라당은 그동안 여야 정보위원들이 국정원에 요청한 비밀자료를 열람하고 업무연락을 위해 국정원 연락관이 상주하던 529호에서 탈취한 문건을 가지고 김대중 정부를 공격했다. 세풍이라는 국기를 뒤흔든 구악의 본산으로 몰린 한나라당은 구정치에 때묻지 않은 정치신인 박근혜를 얼굴마담으로 내세웠다. 그 배후에는 국정원 출신의 노련한 정형근이 있었다는 게 정설이다.
박근혜 부총재는 1월 3일 기자회견에서 "안기부 문건 중에는 '우리당 소속 어떤 의원(이세기 의원)이 탈당 기미가 있는 것 같은데 (안기부) 상부에서 특별한 대책이 필요하다'고 기재돼 있다"고 폭로하면서 정치공작 의혹을 제기해 파문이 일었다. 당장 여당인 국민회의가 증거를 대라고 요구하자 한나라당은 자신들이 탈취한 해당 문건을 분실했다고 둘러댔다.
그러자 국민회의는 1월 6일 탈취한 문건의 변조-조작 의혹을 제기했다. 이에 신경식 한나라당 사무총장은 기자 간담회에서 "여권의 조작 운운은 사건의 본질을 호도하려는 작태"라고 반박했다. 그런데 당일 529호실 문서를 분류했던 홍준표 의원은 "그 같은 내용의 문건은 처음부터 보지 못했다"고 언급해 당 지도부를 곤혹스럽게 했다.
같은 날 국민회의는 이런 논평을 내 박근혜를 조롱했다.
"어머니를 연상케 하는 외모이지만 정치 행태는 18년 장기 집권자의 검은 선글라스를 연상케 한다." 529호 사건 강경투쟁을 주도한 박근혜가 입을 다문 것도 이때부터다.
결국, 김종필 당시 총리가 사건 발생 15일 만에 '유감'을 표명하면서 이 국가기밀 탈취 사건은 유야무야 되었다. 그러나 한나라당은 529호 사건을 구실로 국회 일정 보이콧을 선언했다. 서상목 의원을 포함한 비리 정치인 10여 명의 체포 동의안 처리는 결국 무산되었다. 한나라당의 구악 정치인들은 때묻지 않은 박근혜를 얼굴마담으로 내세워 '방탄국회'에 성공한 것이다.
'박근혜의 외모는 육영수, 행태는 박정희'그로부터 14년이 흘러 새누리당 대선후보가 된 박근혜는 민주당의 '댓글 의혹 국정원 직원 오피스텔 급습' 사건을 두고 '국정원 여직원의 인권 침해'라고 공격했다. 국가 보안시설 문을 따고 들어가 가방을 뒤진 박근혜와는 '딴나라 사람'이었다. 돌이켜보면, 529호 사건과 오피스텔 사건은 그 동기가 국정원의 정치개입 의혹을 규명하기 위한 불법행위라는 공통점이 있다.
물론 다른 점이 더 많다. 전자는 야당(한나라당) 의원과 당직자들이 국가 보안시설을 불법으로 점거해 문건을 탈취한 반면에, 후자는 일부 야당(민주당) 의원과 당직자들이 경찰이 올 때까지 오피스텔을 지킨 것뿐이다. 무엇보다도 전자는 국정원을 희생양으로 삼은 한나라당의 정치공작 의혹이 짙은 반면에, 후자는 재판을 통해 국정원의 정치 개입이 진실로 드러났다.
한나라당 의원들이 529호실 문을 부수고 들어갔을 때 그곳에는 사찰에 필요한 도청 설비는커녕 그 흔한 컴퓨터도 없었다. 왜냐하면 그곳에는 국정원 직원들이 사용하는 전용 LAN(근거리 통신망)이 깔려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전용 LAN은 국정원 본부와 직원들이 상근하는 지부와 분실에만 깔려 있다. 529호실에 국정원 LAN이 깔려 있지 않은 사실은 바로 이곳이 한나라당 주장과 달리 국정원 분실이 아니라는 증거였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 방에는 국회 LAN이 깔려 있었다. 이 방의 주인은 국정원이 아니라 국회(정보위)였기 때문이다.
529호 사건은 국정원 직원들에게 많은 상처와 함께 업무 스타일의 변화를 가져왔다. 이 사건을 계기로 국정원 직원들에게는 오해받을 소지가 있는 자료를 가방에 들고다니지 말라는 엄명이 떨어졌다(안씨는 당시 대학원에 적을 두고 있어 논문 작성을 위해 정치 관련 자료를 가방에 갖고 있었다고 말했다). 한마디로 흔적을 남기지 말라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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