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군산 연극이 발전해서 문화가 향유되는 도시였으면 좋겠어요. 연극 보러 전주나 서울 가는 일이 없게 만들고 싶어요.”
매거진군산 진정석
2014년 봄, 학교를 졸업한 아희씨는 서울에 가야 했다. 영화배우가 되는 길을 찾고 있어야 했다. 그러나 그녀가 짐을 싸서 간 곳은 정읍의 부모님 집. 유럽 여행 초반에 지갑 속에 든 돈을 몽땅 잃고 비행기까지 놓쳤다. 할 수 없이 서울 가려고 모아둔 돈을 당겨서 썼다. 극단의 추미경 대표가 부모님 집에 얹혀살며 일자리를 구하는 아희씨에게 전화했다.
"군산으로 와.""못 가요. 돈 벌어야 해요. 군산 가서 방 얻고 자취하면 돈 들어요.""월급 나오는 자리가 있어. 전국 연극제를 군산에서 한대. 각 극단에서 한 명씩 실무자를 보내거든. 우리 극단은 네가 가면 되지."한 달 월급 150만 원. 월세 28만 원에 생활비 하고도 남았다. 대학 후배들이 거리극 연습하는 것을 봐 주면서 술도 사 줄 수 있었다. 풍요는 5개월 만에 끝났다. 가을부터 아희씨는 '아르떼(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를 통해서 임시 연극 강사가 됐다. 토요일마다 초중등학교에서 연극수업을 해서 한 달에 24만 원, 학교 두 곳에서 강의하고 48만 원쯤 받았다.
2015년 1~2월, 아희씨는 돈벌이가 없었다. "대학 나오면 뭐해? 다 쓸 데 없다. 차라리 공무원 준비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할머니는 "네 밑으로 동생이 셋이야. 막내 대학은 누가 보내냐"는 현실적인 얘기를 했다. 엄마는 연극 그만두라고 눈물로 호소했다. 아희씨는 연극을 계속 하기 위해서 펑펑 울며 맞섰다. 맏딸이 잘 사는 모습을 보여줘야 했다.
"올해 3월부터 '아르떼' 신규 강사가 됐어요. 전라북도 각 학교에서 연극 강의 신청을 해요. 아르떼에서 강사들을 배정해줘요. 1시간 강의하면 4만 원이에요. 매주 월요일에는 고창에 가서 2시간, 화요일에는 순창에 가서 4시간 수업을 해요. 한 달에 백만 원쯤 벌죠. 방학 때는 쉬니까 돈을 다 쓰면 안 돼요. 따로 저축은 못 하지만 생활할 만큼은 버는 거예요."아희씨는 총 다섯 편의 연극에 출연한 배우다. 공연할 때마다 '오늘 잘 했나?' 돌아본다. "관객은 돈을 내고 오는 고객이잖아요. 저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입장이고요"라고 냉정하게 평가한다. 그러나 관람료 1만 5000원, 10년 전하고 똑같은데 "연극은 너무 비싸!"라고 하면 울컥한다. 속이 상해서 한 사람 한 사람씩 붙잡고 열변을 토하고 싶다.
"영화랑은 다르죠. 현장감이 있어요. 배우들이 눈앞에서 살아 숨 쉬잖아요."영화배우 송새벽씨는 아희씨가 있는 극단 '사람세상' 출신. 지난해 공연 때도 군산에 내려왔다. 아희씨는 속으로 '연예인이닷!' 신기해했다. 지난해에 전국 연극제 할 때는 배우 곽도원씨도 만났다. 같이 술까지 마셨지만 "인증샷 찍어요" 조르지 않았다. 극단의 추미경 대표는 배우의 품위를 강조한다. 그녀도 '유명한 배우'처럼 배우이기 때문이다.
아희씨는 서울 가겠다는 생각은 안 한다. 극단 '사람세상'에 온 몸을 담그고 있다. 무대와 동료들이 소중하다. 여전히 텔레비전 드라마를 보다가 '이야! 저 역할 매력 있다. 나도 해보고 싶다'고 설렌 적도 있다. 그러니 스물다섯 살 배우의 앞날은 모른다. 어느 날, 변아희씨 연기를 영화관에서 볼 수도 있다. 현재 극단 사람세상의 '딸 전문' 배우인 그녀는 말했다.
"공연, 꾸준히 하고 있거든요. 극단은 차병원에서 나운 초등학교 가는 길 지하에 있어요. 공연하면 <교차로>신문에도 나오고, 길거리에도 공연 포스터 붙여놓거든요. 많이 보러 오세요. 뜻 있는 연극 배우들도 연락 주시고요. 항상 기다려요. 군산 연극이 발전해서 문화가 향유되는 도시였으면 좋겠어요. 연극 보러 전주나 서울 가는 일이 없게 만들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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