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르막다가올 인생의 오르막에서도 지금처럼 스스로 잘 이겨나가겠지요?
정상혁
되풀이되는 오르막과 내리막을 겪다보면 힘들기도 하지만, 덕분에 삶에 대한 깊은 사유와 소소한 깨달음을 얻기도 한다. 내리막이 항상 좋을 것 같지만 오히려 쓰러질까봐 더 불안할 때도 있다. 내게는 힘들고 싫기만한 오르막이겠지만 반대 방향으로 달리는 사람에겐 세상에서 제일 반가운 길이기도 하다. 지금 또 하나의 오르막을 열심히 올라가는 누리는 무슨 생각을 하면서 올라가고 있을까?
마침내 수련장에 이르는 마지막 고개를 힘겹게 넘은 뒤 긴 내리막이 나오자마자 막혔던 시야가 뻥 뚫렸다. 오늘의 목적지인 청소년수련장 캠핑장이 눈에 들어왔다. 오후 3시를 조금 넘어선 시간이었다.
야영장과 그 주변은 연휴를 맞아 나들이 온 사람들로 북적였다. 캠핑장은 살던 집을 그대로 옮기기라도 한 듯 으리으리한 텐트가 즐비했다. 그런 멋진 텐트들 사이에 가장 작고 귀여운 한 칸짜리 사랑스러운 오두막을 지었다.
이곳 캠핑장의 가장 큰 장점이라면 무엇보다도 온수 샤워가 가능하다는 점이다. 거기에 가까운 거리에 설거지를 위한 시설이 갖춰져 있어 수도 꼭지를 돌리기만 하면 얼마든지 물을 쓸 수 있다. 주변에는 편의점과 카페가 갖춰져 있고 밤에는 무료 영화도 상영한다. 또 캄캄해지면 조명이 켜지는 출렁다리의 멋진 모습도 빼놓을 수 없다.
짐을 모두 내리고 가벼워진 자진거를 타고 강 건너 가정역으로 향했다. 그런데 좀 이상한 것이 열차 출발 시각이 다 돼가는데도 매표소는 굳게 닫혀 있었으며 기차를 타려고 기다리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는 점이다. 이상하게 여겨 매표소 앞 시간표를 확인해보니…, 아뿔싸! 이번 여행 최대의 실수를 저질러 버렸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빠가 착각했어... 큰일이야""누리야, 어쩌지? 이 역이 아닌가봐. 아빠가 착각해서 곡성역에서 출발하는 표를 끊었나봐."
"헐~. 그럼 빨리 곡성역으로 가야지!"내가 예매해 둔 오후 3시 30분 기차는 가정역이 아닌 곡성역에서 출발하는 표였던 것이다. 표가 매진되기 전에 서둘러 예매하는 것에만 신경 쓰다가 출발역과 시각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내 잘못이었다.
벌써 시각은 오후 3시 25분. 택시를 타고 간다고 해도 절대 도착할 수 없었다. 기차마을에서 증기기관차를 태워주겠노라 꼬여서 누리를 데려와놓고선 떡하니 오리발을 내미는 꼴이 됐으니 누리에게 미안해 죽을 지경이었다. 누리는 누리대로 잔뜩 실망한 것 같았다.
역에 세워져 있는 전시용 기차와 레일바이크 타는 사람들을 구경하는 것으로 아쉬움을 달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누리 얼굴에는 실망한 기색이 사그러지지 않았다. 나는 나대로 큰 죄를 지은 죄인처럼 어쩔 줄 몰라 했다. 이럴 때는 계속 그 상황 속에 빠져있는 것보다 다른 데로 관심을 유도하는 편이 나을 것 같았다.
"누리야, 기차도 못 타게 됐는데 대신 강가로 내려가서 발 담그고 놀자! 강속에 다슬기가 많이 살 것 같아."
"좋아요. 잡아서 집에 가져갈래!"물속 돌들에는 이끼가 살짝 끼어 있어 미끄럽긴 해도 물살이 세지 않고 얕았다. 발을 담그고 쉬기에 제격이었다. 돌을 뒤집어 올리니 크고 작은 우렁이들과 이름 모를 벌레들이 많았다.
기차를 놓친 아쉬움은 벌써 잊었는지 누리도 바쁘게 돌아다니며 다슬기 잡이에 여념이 없다. 딱 10마리만 잡겠다는 약속은 벌써 잊었나 보다. 놓친 것은 기차지만 얻은 것은 섬진강변에서의 즐거웠던 30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