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수교장군목을 지나면 만나는 현수교입니다.
정상혁
간간이 등에 작은 배낭을 지고 달리는 자전거 여행자들이 보일 뿐 길은 뻥 뚫려 있어 아들과 내가 전세를 낸 전용도로 같았다.
마실숙박휴양캠핑장을 지나 5분이나 달렸을까? 새 다리를 놓고 있는 공사현장이라 비포장 길을 지나야 하는 구간이 시작되었다. 그런데 저 앞쪽에 두 사람이 흙바닥에 주저 앉아 있다.
"혹시 튜브 남는 것 있으세요? 벌써 두 번째 이러는데 자꾸 펑크가 나네요."경기도 일산에서 오셨다는 두 분은 엄마와 아들이었다. 둘이 짝을 이뤄 '엄마의 로망'을 실현 중인가 보다. 그런데 두 번 연속 펑크. 게다가 단순 펑크도 아니고 공기 주입구 부근이 반쯤은 찢어져 너덜거릴 정도로 심각한 상태였다.
마침 새 튜브를 챙겨왔는데 튜브를 건네기도 전에 돈을 먼저 쥐어주시는 걸 보니, 어지간히 마음이 급하셨던 것 같다. 그럴 만도 한 것이 자전거를 고칠 만한 가장 가까운 곳이 수십 km나 떨어진 순창읍에 가야 있다.
같은 자전거 여행자로서 묘한 동지애가 느껴지는 데다, 갈 길은 멀어도 어려움에 처한 분들을 외면할 수 없어서 솜씨는 없지만 쪼그려 앉아 수리에 손을 보탰다. 대충 수리가 마무리되고 슬슬 출발하려는데, 우리를 갑자기 불러 세웠다.
"아이구, 우리 아들내미 가면서 먹어."텐트에서 잔다는 누리가 눈에 밟혔는지 치즈와 직접 만드셨다는 꿀에 버무린 견과강정을 쥐여 주었다. 생면부지의 사람들이 우연히 길에서 만나 몇 분 동안 깊은 정을 나누고 헤어졌다.
아뿔싸... 점찍은 캠핑장소에 텐트를 칠 수 없다니라이딩을 시작한 지 3시간이 넘자 슬슬 신호가 오기 시작했다. 아들은 엉덩이가 아프다며 연신 패달을 밟고 일어서고 나는 손목이 시큰해서 왼손과 오른손을 수시로 털었다. 누리의 자전거 패달링이 점점 느려지는 것이 느껴질 때쯤 우리는 섬진강 군민공원 부근에 다다랐다. 이곳은 내가 미리 점찍어 놓은 첫째날 숙박장소였다.
물과 전기를 구할 수 있는 화장실 딸린 넓은 공터가 있는 곳이고, 강변에 자리하고 있어 경치도 좋은 이 곳, 캠핑장소로 딱이다. 그런데 아뿔싸! 공원 부근 진입로에 걸려 있는 플래카드에는 야속하게도 '취사와 야영이 불가합니다'라고 적혀 있다. 로드뷰로 싹싹 훑어가며 찍어놓은 곳인데 이렇게 배신을 하다니.
누리는 이미 지쳐 버려서 더 이상은 달리기 싫은 눈치고, 더해서 여기서 캠핑을 못한다 하니 대실망했다. 그렇다고 대문짝만하게 써놓은 것을 대놓고 무시할 배짱 없는 아빠는 누리를 살살 달랬다.
"아빠, 그냥 여기서 텐트 치면 안 돼?"
"누리야, 우리 조금만 더 달려볼까? 이 근처 마을에 들어가면 텐트칠 곳이 있을 거야." 자신있는 듯 말하긴 했지만 사실 확신은 없었다. 당연히 캠핑이 가능할 것을 확신하고 'Plan B(플랜 비)'를 준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기약없이 무작정 계속 달리기에는 시간적으로나 체력적으로나 무리다. 시간도 점점 늦어져 어두워질 것 같고 해가 사라지자 날씨도 더 쌀쌀해질 것 같아 걱정이다. '이래서 집 나오면 고생인가?'
무작정 근처 마을로 들어가 보기로 했다. 지금까지의 경험상 시골마을에는 마당 넓은 마을회관이나 작은 정자가 하나씩 있기 마련이다.
"누리야, 저기 정자다, 정자!"
"오예~"그리고 내 추측은 적중했다. 천만다행으로 얼떨결에 찾아 들어간 마을 안에 정자가 있었다!
빗나간 계획... 여행을 떠나게 만드는 이유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