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망증으로 인해 학교로 가는 여정은 힘들었다.
김희선
다시 중국으로 떠나는 마음은 무겁기만 했다. 내려앉은 공기가 돌덩어리처럼 발부리에 차인다. 오후 1시 비행기를 타기 위해 인천공항으로 무거운 발걸음을 내디뎠다. 이미 학기가 시작해 마음이 조급하면서도 졸업반이라 수업이 없어 늑장을 부려도 된다고 자기 합리화를 했다.
생필품과 옷가지는 사흘 전 EMS(우체국 국제특급우편)로 부쳤는데도 가지고 가야 할 짐이 산더미다. 20㎏을 보내는데 요금이 10만 원이다. 비행기로 배송하니 싸지 않다. 하지만 비교적 속도가 빨라 학교까지 일 주일 정도면 도착한다.
아직 한국 통신사에 연결된 휴대폰이 손에 쥐어져 있다. 유심칩을 빼야 하는데 핀을 가져오지 않아 중국 유심칩으로 바꿔 낄 수가 없었다. 학교까지는 먹통 휴대폰인 것이다. 도착할 때까지 전화할 일은 없을 거라 생각하고 신경 쓰지 않았다. 하지만 이것이 재수 없는 날의 시작을 알리는 전조였을 줄이야.
선행은 과연 행운을 가져올까?시간이 남아 인천공항 이곳저곳을 거니는데 카트 안에 덩그러니 남은 휴대폰이 보였다. 주위를 둘러보니 주인으로 보이는 사람이 없다. 아마 없어진 것을 알면 꽤 애간장이 탈 것이다. 주워 분실물 센터에 맡겼다. 착한 일이란 생각에 뿌듯해하며 비행기에 탑승했다.
하지만 비행기는 관제탑의 승인이 떨어지지 않아 한 시간이 연착됐다. 예상보다 늦은 두 시 반이 되어서야 다롄(大连)에 도착했다. 공항에서 기차역으로 가려면 시간이 촉박할 것 같았다. 진저우로 가는 고속 열차는 다섯 시 전에 끊기기 때문이다. 한 시간 전에는 역에 도착해야 시간이 넉넉하다.
날이 날인지 택시조차 오지 않는다. 발을 동동 구르기를 십여 분. 두 명의 승객을 태운 허름한 택시가 선다. 기차역으로 가는 사람은 타란다. 합승이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조급한 와중에도 일단 가격을 물어본다. 나중에 딴말하는 택시 기사가 많기 때문이다.
"아저씨, 얼마에 가는 거예요? 아니면 미터기를 켜고 가는 거예요?""30위안!"뻣뻣한 대답이다. 어쩔 수 없이 탔는데 기사 아저씨가 출발하자마자 담배를 꺼내 뻑뻑 피우기 시작한다. 짜증이 났지만 한편으로 중국에 왔다는 느낌이 물씬 밀려든다. 도착하니 미터기에 찍힌 32위안을 달란다. 내가 타기도 전에 켜있는 걸 봤지만, 2위안(약 350원)에 말싸움하기 싫어 어금니를 물고 기차표를 사러 향한다. 다행히 오후 4시에 출발하는 120위안(약 2만 1500원)짜리 고속열차 표를 살 수 있었다.
이제 진저우에 도착해서 택시를 타고 학교에 가면 모든 게 끝인 것이다. 제시간에 미끄러져 들어오는 기차. 승차를 하고 음악을 들으며 자다 깨다를 반복하는 순간, 문득 허전함이 느껴졌다. 급하게 짐을 확인했다. 25인치 캐리어, 크로스 가방과 빨간 배낭. 그런데 배낭이... 아무리 생각해도 배낭을 기차 선반에 놔둔 기억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