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을 '정말 사랑한다'는 열차 승무원하노이에서 중부지방의 도시 훼로 가는 기차 안에서 만난 승무원은 몇 마디 배운 우리말을 섞어쓰며 내내 우리 가족에게 친근하게 대해주었다. 중간 정차역에서 둘째 아이와 함께 사진을 찍고 싶다며 포즈를 취했다. 그도 어리다고 할 만큼 젊었다.
서부원
베트남어 인사말인 '신짜오' 외엔 단 한마디도 할 줄 몰랐던 우리에게 택시 기사도, 식당 주인도, 시장 상인도 모두 서툰 영어로 매번 똑같은 질문을 던졌다. "한국에서 오셨죠?" 외모만으로는 일본인, 중국인 등과 쉬이 구별이 어려울 텐데도 늘 그랬다. 한국인 관광객들이 그만큼 많다는 뜻일 테지만, 그들의 표정은 하나같이 밝고 환했다. 마치 가까운 친구라도 만난 듯 거리낌 없이 반가운 얼굴이었다.
이따금 어설프나마 우리말로 '한국을 정말 좋아한다'며 호들갑스럽게 인사를 건넬 때도 있었다. 대개 앳된 학생들과 20대 초반쯤으로 보이는 젊은이들이다. 케이-팝과 드라마의 영향일 텐데, 초면에 생뚱맞게 배우 김수현을 직접 본 적 있는지를 묻기도 했다. 우려했던 우리와의 '역사적 앙금'이 전혀 없어 보여 다행스러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채 반세기도 지나지 않은 역사를 이렇게 빨리 잊어도 되나 싶어 솔직히 당황스러웠다.
그들에게 과거는 그저 지나간 시간으로 기억되는 듯했다. 프랑스, 미국 등 내로라하는 제국주의 국가들과의 전쟁에서 식민지로는 세계 최초로 승리를 거둔 빛나는 역사를 단절적으로 기억할 뿐, 지금 그들의 삶을 굳이 엮으려 하지 않는 것 같았다. 혹 오지랖 넓게 베트남 전쟁에 대해 슬쩍 말이라도 꺼낼라치면, 그들은 마치 똑같은 대본 외우듯 이렇게 말했다.
"미국과의 전쟁, 잘 알죠. 그러나 과거에 얽매이고 싶지 않아요. 그저 우린 앞만 바라보고 갈 뿐이에요."참혹했던 과거사에 대해 그야말로 '쿨'한 사람들이다. 관대함은 승자의 몫이라고, '세계 최초'라는 수식어와, 골리앗을 쓰러뜨린 다윗으로서의 뿌듯함과 당당함 때문만은 아닌 듯했다. 다들 되레 이제 와 그게 무어 그리 중요하냐는 눈치였다. 적이 놀라워 주제넘을지언정, 통역만 된다면,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단재 선생의 일갈이라도 들려주고 싶을 정도였다.
그들의 저 '쿨'함은 대체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여러 이유가 있을 테지만, 우선 지금 베트남엔 전쟁을 직접 겪은 세대가 많지 않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젊은 세대일수록 남북 통일에 대한 관심과 의지가 상대적으로 더 낮은 것과 비슷한 이치다. 2014년 현재 베트남 인구 통계에 따르면, 베트남은 9천만 명이 넘는 인구 중 평균 연령이 고작 28세에 불과하고, 40세 이하의 인구가 70%에 이르는, 세계에서 가장 젊은 나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