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대심판정 모습.
연합뉴스
마지막 순간 윤씨와 함께 있었던 김씨의 주장대로 사건은 사고사로 결론 나는 듯했다. 하지만 김씨가 이 사고로 거액의 보험금을 받은 사실을 알게 된 유족들의 문제제기와 수사기관의 재조사로 김씨가 다시 용의선상에 올랐다. 검찰이 2012년 4월, 김씨를 살인죄 등으로 기소하면서 법정 공방은 시작됐다.
그런데 윤씨의 주검은 부검도 하지 않은 채 2010년에 화장을 해버린 뒤였다. 사건이 난관에 부딪히는 듯했으나, 1심을 맡은 인천지법(제12형사부 재판장 박이규)은 간접증거만으로도 유·무죄를 판단할 수 있다고 보았다. 10번이 넘는 재판기일을 열고 20명이 넘는 증인들을 법정에 부르는 등 6개월간의 심리 끝에 법원은 살인사건으로 규정했다.
법원은 우선, 사고 현장 상황이 김씨의 진술과 일치하는지 살폈다. 결과는 부정적이었다. "윤씨가 산낙지를 먹다 질식에 이를 정도로 호흡 곤란을 느꼈다면 고통으로 강하게 몸부림쳤을 것"인데도 "평온한 표정으로 반듯하게 누워 있었고 술자리가 전혀 흐트러지지 않은 상황은 김씨의 주장과 양립할 수 없다"고 의문을 제기했다. 또 윤씨가 누워 있던 곳이 술자리와 상당이 떨어진 곳이라는 점도 납득할 수 없었다.
사망한 여성은 정말로 낙지를 먹었을까
윤씨가 낙지를 먹었다는 사실도 인정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 윤씨가 통낙지를 먹었다고 하다가 낙지다리를 먹었다는 하는 등 김씨가 말을 바꾼 점 ▲ 윤씨는 치아우식증(충치)으로 씹기도 힘든 상황이었고 ▲ 더구나 술에 취한 윤씨가 작지 않은 산낙지를 제대로 자르지도 않고 먹었다는 건 이해하기 힘들다고 보았다.
▲ 윤씨의 몸에서 낙지가 발견되지 않은 것에 대해, 김씨는 윤씨의 입에서 낙지를 꺼냈다는 진술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의학적으로 이것이 매우 어렵다는 전문가의 소견이 불리하게 작용했다. 낙지 질식사를 인정하기 어렵다는 얘기다.
법원은 "윤씨가 질식에 이른 이유는 낙지로 인한 질식의 가능성을 제외하면 김씨의 행위 외에는 다른 원인을 상정하기 어렵다"고 했다. 결국 "윤씨는 만취 상태에서 타월 등으로 코와 입을 막는 등 호흡을 곤란하게 하는 김씨의 유형력 행사에 제대로 저항하지 못하고 심폐기능 정지에 이른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정리하자면 사망원인은 비구폐색 질식사, 즉 김씨가 만취한 윤씨의 입과 코를 천으로 막아 살해했다는 것이 1심의 판단이다.
사건 전후 김씨의 정황도 재판부가 보기에는 미심쩍었다. 재판부는 ▲ 별다른 수입 없이 채무변제독촉까지 받으면서도 고급차를 구입하는 등 경제적 목적의 살해동기가 있었고 ▲ 사고 직전 김씨가 자신의 형편에 상당히 고액인 월 13만 원짜리 보험을 윤씨 명의로 가입한 뒤 수익자를 자신으로 변경한 것은 상당히 이례적이고 ▲ 휴대전화가 있던 김씨가 모텔종업원에게 119 신고를 부탁한 것은 시간을 버는 동시에 목격자를 만들기 위한 행동이 아닌지 의심이 간다고 판시했다.
특히 ▲ 윤씨가 중환자실에 있을 때 보험설계사에게 사망보험금을 문의하고 ▲ 다른 여성과 교제를 지속하였을 뿐 아니라 ▲ 보험금 2억 원을 받은 뒤 윤씨 부모와 연락을 끊은 사실 등은 "결혼을 앞둔 연인을 갑작스런 사고로 잃은 사람의 처신으로는 도저히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이라고 지적했다.
인천지법은 2012년 10월 "김씨는 보험금을 노리고 연인 윤씨를 살해하였다"며 무기징역형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재산적 탐욕에 기인하여 연인의 애정과 신뢰를 이용하고 살해할 것을 계획하였다는 점에서 지극히 비인간적이고 잔혹하다"면서 "사회로부터 영구히 격리시키기로 한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항소심, 1심 살인 결론 반박... "과학적 증거, 오류가능성 없어야" 하지만 반 년 뒤, 서울고법(제4형사부 재판장 문용선)은 심리 끝에 정반대의 결론을 내린다. 2심은 김씨를 살인범으로 규정한 근거들을 정면으로 반박한다. 재판부는 "살인죄도 간접증거만으로 유죄를 인정할 수 있다"면서도 "신중한 판단이 요구된다"고 전제했다.
"살인죄 등과 같이 법정형이 무거운 범죄의 경우에도 직접증거 없이 간접증거만에 의하여 유죄를 인정할 수 있고, 살해의 방법이나 피해자의 사망경위에 관한 중요한 단서인 피해자의 사체가 멸실된 경우라 하더라도 간접증거를 상호 관련하에서 종합적으로 고찰하여 살인죄의 공소사실을 인정할 수 있다.이 경우 범행 전체를 부인하는 피고인에 대하여 살인죄의 죄책을 인정하기 위해서는 피해자의 사망이 살해의사를 가진 피고인의 행위로 인한 것임이 합리적인 의심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증명되어야 한다."특히 유죄를 인정하는 과학적 증거방법은 "오류 가능성이 전혀 없거나 무시할 정도로 극소한 것으로 인정되는 경우라야 법관이 사실인정을 하는 데 상당한 구속력을 가진다"는 대법원 판례를 상기 시켰다. 실제로 법정에서 유죄가 인정되려면 '무죄보다 유죄 가능성이 더 높다'는 정도로는 안 되고, 확실성에 가까워야 가능하다.
사망원인이나 유전자 검사 등을 둘러싸고 과학적인 증거를 채택했는데 오류가 있을 수 있거나 반증이 가능하다면 그 증거도 일단 의심을 받을 수 있다.
2심은 사망원인부터 따졌다. 그 결과 1심의 판단처럼 비구폐색 질식사의 가능성은 낮다고 보았다. 왜 그럴까. 만일 천으로 코와 입을 막아 사람을 살해한다면 성인이라면 본능적으로 저항을 하게 된다. 따라서 비구폐색 질식사를 인정하려면 ① 피해자의 입안이나 얼굴 등에 저항의 흔적으로 상처가 남는 상태이거나 ② 본능적인 저항이 불가능할 정도로 의식을 잃었다는 상태였다는 점이 증명되어야 한다.
재판부는 이같은 법의학자들의 소견을 사건에 적용한다. 먼저 윤씨의 얼굴 등에는 상처나 흔적이 발견되지 않아 ①은 인정되지 않았다. 또 윤씨가 술을 마셨지만 몸을 못 가눌 정도는 아니었고 모텔에도 혼자 걸어갔던 점으로 보아 ②의 상태도 아니었다고 판단한다.
그렇다면 윤씨는 낙지를 먹었을까. 재판부는 "사고 현장에는 젓가락 2벌이 손잡이가 서로 반대편으로 향하도록 놓여 있었다"는 수사기록에 주목했다. 두 사람 모두 낙지를 먹고 있었던 것으로 파악했다. 재판부는 현장에서 발견된 낙지의 크기로 보아 무심코 입에 넣을 경우 충분히 들어갈 수 있다고 보았다.
또한 김씨가 윤씨의 목에 손가락을 넣어 낙지를 꺼냈다는 진술도 불가능하지는 않다고 판단했다. 법의학자들도 "손가락으로 꺼낼 수도 있다"거나 "어렵다는 것이지 반드시 불가능하다는 것은 아니"라고 진술하였고, 윤씨 스스로 뱉어냈을 가능성도 남아 있기 때문이다. 2심은 비구폐색 질식사보다 기도폐색 질식사 가능성에 더 무게를 두었다.
윤씨가 몸부림친 흔적이 없는 점에 대해서도 "질식으로 심폐기능이 정지하거나 의식을 잃고 쓰러지게 되면 얼굴 표정이 펴지게 되어 편하게 누워있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는 전문가 증언을 들어 1심을 반박했다. 또한 두 사람이 술을 마신 모텔방의 구조상 한 사람은 출입문쪽에 앉게 되는데 만일 윤씨가 그 자리에 앉았다면 설사 몸부림을 쳤다 하더라도 술자리가 흐트러지지 않을 수 있다는 점도 지적했다.
재판부는 윤씨가 먹은 낙지의 부위, 윤씨의 목에서 낙지를 꺼낸 시점과 관련해 김씨의 진술이 바뀌는 부분에 대해서는 "극도의 당황으로 기억이 불분명할 수도 있고, 질식사를 배척할 사정까지는 아니다"라고 밝혔다. 따라서 낙지 질식사의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었다.
재판부는 "현장에서 낙지를 수거하여 씹은 자국이 있는지, 윤씨의 DNA가 묻어 있는지 등을 조사하였다면 피고인의 주장이 사실인지 여부를 쉽게 알 수 있었을 것"이라며 수사에 대해 우회적으로 아쉬움을 표했다.
2심, "범행동기 증명되지 않았고 계획된 살인 단정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