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오후 서울 용산구 철거민참사 현장에서 유가족과 시민들이 참석한 가운데 6주기 추모기도회가 열렸다.
이희훈
1월 20일은 용산참사가 일어난 지 6년째 되는 날이었습니다. 그때도 몹시 추웠고 강제철거로 삶터를 위협당하던 철거민들은 남일당 옥상으로 올랐고, 까치집처럼 얼기설기 비바람 눈보라 피할 움막을 만들었고, 거대한 자본과 정권에 맞서 마지막 싸움을 준비했죠. 단지 너무 억울하고 답답해서, '우리 같은 사람이 여기에도 있다'고 알리고 싶은 맘뿐이었습니다.
그런데 6년이 지난 오늘 스타케미칼 노동자는 239일째, 쌍용차 노동자들은 39일째 높은 굴뚝 위에 있습니다. "여기 사람이 있어요!" 그때처럼 소리치고 있습니다.
차광호 동지! 김정욱 동지! 이창근 동지! 얼마나 힘드세요? 말이 좋아 고공농성, 굴뚝농성이지 그게 어디 사람이 할 노릇입니까? 말도 안 되는 짓을 동지들은 하고 있습니다. 인간으로서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을 동지들은 하고 있는 것입니다. 정말 하기 싫은 일을 눈물을 머금고 어금니를 깨물고 또 깨물며 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내려오고 싶겠어요? 저녁 해가 사위어가고 저기 굴뚝 아래 집으로 돌아가는 발걸음들이 종종거릴 때, 골목길에 학생이라도 하나 보이면 얼른 내려가 손잡고 같이 집에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 왜 없겠어요? 죽지 못해서, 먹고 힘내서 싸우기 위해 줄에 매달아 올려주는 끼니를 대할 때마다 얼마나 절망스럽고 고통스럽겠어요?
아침 해가 밝아오고 하루가 시작될 때, 또 하루 긴 싸움을 시작할 때마다, 하늘 한번 쳐다보고 땅 한번 내려다보며, 몇 걸음 뗄 수도 없는 굴뚝 위의 자기 자리, 자기 존재를 확인하는 순간, 파도처럼 밀려오는 거대한 외로움을 어찌 감당할 수 있겠어요?
동지들이 어느 날 모진 결심을 하고 굴뚝 위로 오르며 '이렇게 하면 악덕자본이 손을 들리라', 혹은 '이렇게 하면 박근혜정부가 나서서 해결해주리라'고 생각하지 않았지요. 그렇게 쉽게 해결될 일이 아니라는 걸 동지들은 너무도 잘 알고 있으니까요. 또 동지들은 그 굴뚝에 오르기 전에도 할 수 있는 일을 다 했고 싸울 만한 싸움을 다 싸웠으니까요. 합리적, 상식적, 이성적, 법적, 원칙적, 인간적 뭐 이런 말들이 제대로 쓰이는 사회라면, 이미 진작 해결되었을 문제들이니까요.
주위의 모두가 이 비상식과 불합리, 비인간적 불법에 머리 숙일 수밖에 없다고 고민하며 절망할 때, 동지들은 그럴 수는 없다고, 가만히 있을 수 없다며, 아닌 것에 머리 숙이고 무릎 꿇을 수 없다며, 불합리엔 불합리로 절망엔 절망으로 대할 수밖에 없다며, 굴뚝에 오른 것입니다.
동지들은 굴뚝에 오르며 수없이 들은 '가만히 있어라. 조금만 참으면 해결될 것이다'라는 말과, 세월호는 기울어가는데 '가만히 있어라. 곧 구조될 것이다'라는 선장의 방송을 떠올렸겠지요. 그러나 동지들은 남들은 어쩔 수 없이 가만히 있을 때, 세월호 참사가 우리에게 남겨준 교훈인 '가만히 있으면 안 된다'는 말을 과감히 실천한 것이지요.
차광호·김정욱·이창근! 부디 구질구질해지지 마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