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직법 철폐를 위해 오체투지를 벌이고 있는 금속노조 기륭전자분회 조합원들과 연대단체 참석자들이 26일 오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경찰의 저지로 막히자,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소장이 울분을 삼키고 있다.
유성호
그러면서 생각했습니다. 이런 만행을 마구잡이로 밀어붙이는 박근혜 독재의 제깔(모습)은 무엇이라고 해야 할까. 간단합니다. 이 정권은 사람의 피눈물까지 자근자근 짓이기는 독재다. 아니 사람의 목숨인 사람의 따슨 끼, 왜 거 정이라는 거 있잖아요. 그것까지 알린알린 빼앗아 사뭇 얼음덩어리처럼 된 사람 몸까지 아삭아삭 밟아대는 '얼음장독재'로구나, 그런 생각이 소스라쳐와 그 덕으로 이 붓을 달리게 되었음을 털어놓습니다.
그렇구나, 저 높은 곳에 올라 있는 노동자들에게 반드시 해야 할 말이 떠올랐던 것입니다. 첫째, 노동자 여러분, 여러분들에게 문득 덮쳐오는 외로움이라는 것을 슬기롭게 다스리시라는 겁니다. 무슨 말이냐. 여러분들은 이참(지금) 하루하루 외로운 지경으로 몰리고 있는 것 같아도 전혀 그렇지가 않습니다. 여러분들은 이참 이물입니다. 맨 앞에서 달려가는 전위, 앞장 말입니다.
때문에 날이 갈수록 홀로 남은 것 같아도 전혀 아닙니다. 까마득히 앞서 가노라면 몰아쳐오는 바람을 갈라치고 있을뿐더러, 앞장서 길을 내야 하는 보람과 영광의 알매(주인공)인 것입니다. 그것을 뭐라고 하는 줄 아시는지요. 역사, 그 창조라고 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여러분들을 일러 까마득히 앞서 달려가는 이물이라고 하는 것은 역사와 함께 가는 것을 뜻하는 것이요, 그것은 여러분들이야말로 이 몹쓸 독점자본주의의 피해를 받고 있는 엄청난 민중, 비정규직과 함께 있고, 그들을 뒷배로 하고 있는 것이니 어찌 외로움이라는 세속적 낱말이 낑겨들 수가 있겠어요.
그렇습니다. 외로움이란 쓸쓸하다, 기댈 데가 없다, 또는 힘이 없다는 말하고는 다릅니다. 진짜 외로움이란 앞서가는 이의 거룩함이요, 위대함을 이르는 창조의 세계에 올라 있다는 것, 그래서 자부심을 가져도 된다 그 말입니다.
둘째, 여러분들은 이참 저 높은 꼭대기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것 같아도 알로는(사실은) 이 거대한 독점자본주의의 치명적 암흑과 맞서 참된 사람의 꿈 '바랄(이상)'을 잉태하고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여러분들은 우리들 눈앞의 현실적 변혁으로 "해고는 살인이다, 그러니 원직복직 이루어내라"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이 문제에 한해서만큼은 단 한 치도 물러설 수가 없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오늘의 자본축적구조의 기본적 개혁인 돈이 주인이 아니라 사람이 주인인 세상, 돈벌이의 무제한 자유가 아니라 사람과 자연의 생존의 전면적 자유라는 과제의 한 가닥인 것입니다.
다시 말해 사람이 사람으로 살 수가 없는 얄곳은 갈아엎고 사람이 사람으로 살 수가 있는 살곳을 위해서 씨를 뿌리자는 꿈, 이를테면 '바랄'을 잉태하고 있는 것과 다를 수가 없으니 여러분들의 오늘의 이 아픔은 무엇이냐 이 말입니다. 인류의 보편적 염원을 낳고자 하는 아픔입니다. 그 아픔의 진통이 이참 저 하늘 높은 공장 굴뚝, 그 비좁은 곳에서 한바탕 배앓이를 하고 있는 겁니다. 비록 바사지는 것처럼 힘들긴 하지만 오죽 눈물겹습니까. 자랑스럽게 눈물겨운 것입니다.
'왱왱 찌꿍 찌꿍' 노래를 하염없이 불러보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