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속노조 쌍용차지부의 한상균, 문기주, 복기성 비정규지회 수석부지회장은 2012년 11월부터 171일간 경기도 평택시 쌍용자동차 공장 부근 철탑에서 국정조사 실시, 비정규직 정규직화, 해고자 복직 등을 요구하며 고공농성을 벌였다.
권우성
쌍용자동차의 정문을 지나며, 경비원에게 굴뚝이 어디 있는지를 물었다. 그는 상기된 표정으로 외면했다. 나는 그의 입술에다가 '미안합니다'라는 동작을 그려봤다. 지루한 회색 하늘 한편에, 불끈 치켜 오른 굴뚝이 있었다.
2009년 5월부터 시작된 이들의 싸움, 참으로 지난한 투쟁의 연속이었다. 그해 여름, 김혁을 비롯한 몇몇은 도장공장 옥탑으로 올랐다. 그들은 군사용 레이더처럼 밤낮으로 공장 안팎을 감시했다. 8월에 딱 한 번, 비가 내렸다. 수십 일을 옥탑에서 동고동락하던 그들은 온몸을 드러낸 채로 덩실덩실 춤추며 목욕을 했다. 아마 이들 중 어느 누구도 3년 후 자기들처럼 높은 탑에 오를 노동자를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2012년 11월 한상균, 문기주, 복기성은 쌍용자동차 부근 송전탑 위에 올랐다. 늦가을에 시작된 이들의 싸움은 겨울, 봄을 거치며 171일간의 사투 끝에 막을 내렸다. 3년간의 감옥 생활을 마친 한상균이 거친 철탑 위에 오르기까지, 그 아래 해고노동자의 삶은, 차라리 철골위에 엉성하게 얽어 놓은 천막보다 못했다. 정규직 노동자 한상균과 문기주 그리고 비정규직 노동자 복기성! 그것은 정규직과 비정규직 노동자 연대에 의한 투쟁의 서막이었다.
잿빛 기둥이 점점 가까이 다가왔다. 두 개의 기둥 중 희뿌연 연기를 내뱉는 곳에 김정욱과 이창근이 있다고 누군가 알려줬다. 김정욱이 올랐고, 이창근이 올랐다. 2014년 12월 13일, 다시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은 70미터 하늘에 올랐다. 이들에게는 한 달 전 청천벽력 같은 대법원의 판결이 있었다. 쌍용자동차 노동자의 해고는 경영상의 이유로 적법하다는 것이었다.
나는 어렴풋이 보이는 이창근과 마침내 통화하게 되었다. 굴뚝에 오르던 새벽, 송경동 시인에게 울면서 전화를 했다는 그가 아니었다. 씩씩한 청년의 목소리에 재기발랄한 기획가의 쾌활함이 넘쳤다. '왜 올랐어요?'라는 물음이 목에 걸렸다. 한상균은 그 물음에, '외로웠다'고 했다. 이창근과 김정욱은 무엇이라 말할까, 조금 뒤로 미루기로 했다.
쌍용차 투쟁은 대한민국 해고노동자의 '끝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