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산정이 서있는 곳이 무너지자 카메라를 들고 달려갔다. 그러나 공무원들이 막아섰다. 은행에서 빚을 내서 비행기를 띄워 항공촬영을 했다. 사진은 공산성 붕괴 현장. 붉은 색 안이 남아있는 여장.
김종술
한 : 그 때 김종술 기자가 연락을 해왔다. 공산성이 무너지자 문화재청장이 최초로 방문을 했는데, 1시경에 공산성에서 내려올 것 같으니, 전문가들과 환경단체들이 기자회견을 하면 어떻겠냐는 말이었다. 김 기자의 배후조종 때문에 다른 언론사들이 첫 보도와는 달리 환경단체들의 주장이 담긴 균형 잡힌 기사가 나갈 수 있었다. 하하하.
김 : 배후조종이라기보다는 기자인 나도 균형 잡힌 기사를 쓰고 싶었다. 당시 문화재청장은 공산성을 빨리 복원하려 했지만, 기자회견이 그걸 막았다. 환경단체들이 전수조사를 강하게 요청했기 때문이다. 원인을 알아야 근본적인 복원이 가능하다. 공산성 역사 이래 최초로 정밀조사가 이뤄지고 있다. 내년 12월말까지다.
난, 밤길이 무서웠다 기자 : 금강을 취재하면서 어떤 때에 가장 가슴 아팠나?
김 : 이명박 정부가 4대강 사업 명분으로 내세웠던 것 중 하나는 농민들이 뿌리는 농약과 비료였다. 그것 때문에 환경오염이 된다는 주장이었다. 취재를 하다보니까, 산중턱에 있는 나무를 뽑아 강변에 심은 나무들이 시름시름 앓자 거기에 농약과 비료를 뿌렸다. 그 장면을 사진 취재하다가 멱살을 잡히고 폭행을 당했다. 평생 들어보지 못한 욕을 먹었다. 물고기 떼죽음 사건을 보도할 때에는 'X새끼, 물에 빠져 죽어라' '너 이 X새끼, 밤 길 조심해라'라고 쌍욕을 했고 폭행도 했다. 욕먹고 매 맞고 다니는 기자, 내가 봐도 한심했다. 실제로 밤길이 무서웠다.
기자 : 금강 세종보 준설선 기름유출 때도 화가 나지 않았나?
김 : 제보를 받고 현장에 갔다. 차 창문을 열지 못할 정도로 냄새가 역겨웠다. 세종보부터 공주보까지 완전히 기름으로 범벅이 됐다. 강변에 서니 눈이 따가웠다. 그런데 환경부는 4.5.리터 기름이 유출됐다고 발표했다. 세상에…. 분통이 터져서 그 때 많이 울었다.
한 : 내가 최초 제보자였다. 준설선 기름 유출을 은폐하려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도 달려갔다. 김 기자 말처럼 환경부는 1.5리터 생수병 3통 분량의 기름이 유출됐다고 발표했다. 김 기자가 아니었다면 그냥 덮었을 것이다. 이 때 감시자의 힘을 느낄 수 있었다. 그전까지만 해도 우리가 4대강 사업이라는 거대한 권력을 막으면서 금강을 지킬 수 있을까? 나약한 생각이 들었는데, 누군가 절실한 한 사람이 있다면 막을 수 있다는 자신감이 들었다.
기자 : 김 기자는 온몸으로 취재해왔다. 물고기 떼죽음 특종 취재 때 있었던 '손가락 취재' 이야기도 들려 달라.
김 : 금산 참여연대 활동가 제보를 받고 달려갔다. 백제보 상류에서 환경부 산하 금강 지킴이들이 죽은 물고기를 수거하고 있었다. 그날 수거된 양이 30~40포대였다. 그 다음날은 부여군 환경보호과 직원들이 수거를 했는데, 50미터 떨어진 지점에 무언가를 묻고 있었다. 직감적으로 물고기 사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사체를 그냥 묻으면 2차 수질오염이 진행될 수 있다'고 말하니까, 시치미를 뗐다.
그렇게 말하는 직원 앞에서 손가락으로 땅을 파기 시작했다. 죽은 물고기가 나왔다. 그 다음날에는 150포대를 수거했다. 그런데 환경부는 첫날 35마리, 다음날 100마리를 수거했다고 축소해 발표했다. 그 다음날부터 공무원들이 출근하기 전인 새벽 5시에 나가서 포대를 세기 시작했다. 10일간 내 눈으로 확인한 것만 65만 마리였는데, 환경부는 5만3천 마리라고 발표했다.
정신과 치료를 받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