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성제 MBC 해직기자
이영광
- 쿠르베가 처음 나왔을 때는 첫 아이가 태어났을 때와 같지 않았을까 생각됩니다."그렇죠. 쿠르베는 제 분신같은 존재입니다. 처음 해직기간 동안 지루함과 스트레스를 잊기 위해 스피커를 만들었죠. 그러다가 세상에 하나 밖에 없는 나만의 스피커를 만들어 보자는 욕심에 쿠르베를 개발하게 됐습니다. 처음엔 상품화 하겠다는 생각은 별로 없었고 그냥 평생 거실에 놓고 함께 할 작품을 만들고 싶었어요.
막상 만들어 놓고 보니 주변에서 이왕이면 주문 생산을 해보라고 권유들을 많이 하셔서 용기를 내서 사업을 하게 됐죠. 만약 처음부터 상품화를 염두에 두고 개발했다면 지금보다 좀 더 타협한 디자인이 나왔을 거예요. 왜냐면 만들기 쉬워야하니까. 지금 디자인은 보기에는 예쁜데 여러 가지가 복잡하고 제작해서 파는데 여러 어려움이 있어요. 손이 정말 많이 가죠. 그러나 처음에 그렇게 시작했기 때문에 그냥 계속 하는 거죠. 대량 생산 하긴 어려워요."
- 처음 주문 받았을 때 기억 나세요?"그럼요. 기억하죠. 신기했어요. 그리고 이게 가격이 고가인데도 사겠다는 분이 나타나니까 신기했어요. 처음엔 거의 남기지 않고 원가만 받았죠. 그러다가 사업자 등록을 하게 됐고 조금은 남아야 활동을 할 수 있으니까 가격을 조금 올렸어요."
- 사업자등록을 하고 어려움도 겪었다고 들었어요."사업자 등록을 했으니 사장이잖아요. 그런데 스피커를 만들려면 외국에서 부품을 수입해야해요. 인터넷에서 카드로 결제해야 하는데 안 되는 거예요. 그래서 은행가서 물었더니 한도가 400만 원이래요. 400만 원 가지고 어떻게 부품을 주문하냐고 항의했어요. 그랬더니 '고객님은 사업을 이제 시작해서 매출이 얼마 안 되니까 카드 한도가 적다'는 거예요.
제가 '부품을 사게 해줘야 매출이 오르지 않겠느냐, MBC 다닐땐 한도가 천만 원이 넘는 카드를 썼다'고 했더니 '그건 MBC 계실 때라 그렇죠'라고 하더라고요. 충격을 받았죠. 결국 떼를 써서 한도를 올리긴 했는데 자영업이 만만치 않다는 걸 느꼈어요. 저처럼 회사 다니다가 그만두고 자영업 하시는 분들 많잖아요. 그런 분들이 겪을 곤란한 일이 많겠다고 생각했어요.
홍보도 만만치 않았어요. 치킨집을 열어도 전단지를 돌리잖아요. 저도 그런 거처럼 브로슈어를 만들었어요. 가만히 있으면 사람들이 안 오잖아요. 그래서 어딜 가면 좋을까 생각하다가 큰 레코드숍을 돌아다녔어요. 100부씩 가져다 놓으니까 잡상인인 줄 알고 쫓아내더라고요."
"선배 사업 망했으면 좋겠다는 후배의 말, 가슴 아파"- 한 후배가 '사업이 잘 되면 돌아오지 않을 것 같아 망하길 바란다'는 말을 했는데 그토록 기자로 돌아오길 기다린다는 말이잖아요. 그 말을 듣고 울컥 했을 것 같아요."파업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이런저런 고초를 겪고 있는 후배들을 생각할 때마다 가슴이 많이 아픕니다. 오죽하면 내 사업이 잘 안 됐으면 좋겠다고 하겠어요. 그만큼 힘들단 얘기죠. 전 처음엔 화도 났지만 오히려 해고된 지 오래 돼서 지금은 마음이 평온한 상태에요. 회사 내에는 아직도 힘들어 하는 후배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게다가 MBC뉴스에 대한 신뢰도가 많이 떨어졌다는 얘기를 들으니 더욱 힘들겠죠."
- 1970년대 <동아일보>에서 해직되고 오랜 언론 운동을 해오신 성유보 선생님이 지난 8일 심장마비로 별세 하셨잖아요. 성유보 선생님과의 추억이 있다면 소개해주세요."2008년 여름에 이명박 정권이 정연주 KBS 사장을 해임시키려고 할 때 KBS 앞에서 촛불문화제를 하다가 성유보 선생님과 함께 경찰서에 잡혀간 일이 있어요. 당시만 하더라도 매일 길바닥에 계셨지만 건강하셨어요. 하룻밤을 유치장에서 함께 보냈는데 선생님이 70년대 동아투위 시절 유신정권과 싸우다 해직되고 고생하던 얘기를 해주시더라고요.
실제로 감옥도 다녀오시고 그 후에도 여러 번 경찰서에 끌려가셨던 분이라 이 정도는 아무 것도 아니라고 하시더군요. 아침에 사모님이 찾아와 '또 경찰서 왔냐'고 하시면서 아무렇지 않게 말하시더군요. 힘들게 사시면서도 유쾌하게 겪어내시는 게 보기도 좋고 '저렇게 사는 게 정말 힘든 건데'란 생각을 했죠."
- 시대는 다르지만 똑같은 해직 언론인의 입장에서 성유보 선생님의 별세 소식이 다른 기자들하고 다를 것 같아요. "제가 상가에도 가고 장례식도 참여했는데 가슴이 먹먹하더라고요. 왜냐면 돌아가시기 전에 <뉴스타파> 하고 인터뷰한 게 있어 봤어요. 거기서 선생님이 '국민의 눈으로 사물을 봐야지만 기레기란 소리를 안 듣는데 지금 그게 안 되니까 언론이 기레기 소리를 듣는 거다'라고 하시더라고요. 마지막까지 언론 자유를 외치셨는데 그 분이 꿈꾸시던 언론 자유를 끝내 보지 못하고 눈을 감으셨다고 생각하니 후배로서 죄송하고 송구스럽습니다."
- 쿠르베가 있어도 MBC로 돌아가고 싶어하시는데 단순히 해직이라는 불명예스러운 타이틀 벗기 위한 것만은 아닌 것 같아요."이미 명예회복은 했다고 생각합니다. 왜냐면 2012년 파업과 관련된 여러 재판에서 계속 이기고 있거든요. 재판부가 '2012년 파업은 불법이 아니라 정당했다. 공정방송을 위한 파업은 정당하다'고 인정했기 때문에 전 당당해요. 물론 완전한 복직이 이루어지려면 대법원 판결까지 받아야 하기 때문에 얼마나 걸릴지는 모르겠지만 말입니다. MBC는 제가 20년 청춘을 바쳐서 일해온 고향 같은 곳입니다. 고향으로 돌아가는 건 당연하지요."
- 이런 비유가 적절할지 모르지만 가문 혹은 집안에서 쫓겨난 것과 같아서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을 것 같은 생각도 들 법한데요."아니요. 저는 집에서 쫓겨났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집에서 쫓겨났다면 당연히 돌아가기 쉽지 않겠죠. 김재철이란 사람이 억울한 누명을 씌워서 저를 MBC에서 몰아낸 것이죠. 지금은 김 사장이 없잖아요. 현재 경영진도 저희와 소송하지만 당연히 돌아갈 수 있을 것으로 봐요. 집으로 돌아간단 느낌으로 기다리고 있어요."
"MBC에서 쫓겨난 거 아냐... 당당하게 내 집으로 돌아가고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