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드걸의 음악다방
반지윤
내 기억에도 그 꽉 찬 방 파전들 위로 띄웠던 노래가 있다. 파전보다 더 뜨거워진 공기 위로 무슨 배짱인지 첫 고음을 날렸던 노래.
말하지 못하는 내 사랑은 어디쯤 있을까소리 없이 내 마음 말해볼까동물원의 <말하지 못하는 내 사랑>이다. '해 저무는 소양강'도 아니고 '비가 내리고 음악이 흐르면'도 아닌 담백한 포크 록에 가까운 이 노래로 '살리'다니. 하지만 진짜다. 어디 무슨 노래하나 보자…며 신입 여학생을 바라보던 눈빛들이 일순 감탄으로 바뀌었다니까.
울어 보지 못한 내 사랑은 음 어디쯤 있을까때론 느껴 서러워지는데일 주일이 멀다 하고 상대가 바뀌는 짝사랑이지만, 그래도 내 마음인가 싶어서 혹은 나를 마음에 두고 저 노래를 부르는 걸까 싶어서. 눈이라도 마주치면 괜시리 다들 발그레 해진 볼을 막걸리 탓이라고 눙치고는 했다. 스무 살이니까. 스무 살은 그런 나이였다.
지금 떠올려도 흐뭇한 이 분위기에 다른 노래가 끼어든다. 꼭 그 분위기 끝에는 스님도 흉내 내지 못할 중저음으로 <변해가네>를 읊던 녀석들이 있었다. 화들짝 정신이 든 우리는 다소 우울해진 채 다음 날 이른 아침 수업엔 절대 강의실 뒤에 파전을 시연하지 말자며 헤어지곤 했다.
가진 것 없는 마음 하나로 난 한없이 서 있소 잠들지 않은 꿈 때문일까
지금. 한없이 서 있는 것 같은 느낌은 어디서 오는 걸까? 무한 반복되는 일상? 그 일상에 거침없이 스며드는 불안? 불안의 끝과 끝에는 사건들과 가진 것 없는 마음이 이어져 있는 걸까? 잠들지 않은 꿈이 나와 우리를 지켜주기를. 이 노래가 다시 마음을 채워준 건 이 구절의 위로 때문이었나 보다. 그래 그때 꿈을 소환해야지. 불끈!
앗, 그 친구 녀석 노래 소리가 또 들린다.
'우우 너무 빨리 변해가네 우우 너무 쉽게 변해가네' 동물원이 들려주던 설렘은 잊고, 동물성만 발견하게 되는 사춘기 딸과의 악다구니를 들켰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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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노래로 '살리고, 살리고' 과연 가능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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