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지윤
킹 크림슨의 'Epitaph'(묘비명). 라디오 심야 방송인지 친구가 알려주었는지 정확한 기억은 나지 않는다. 나는 '묘비명'이라는 제목을 듣자마자 심장박동이 빨라졌다. 심마니들이 산삼을 발견했을 때의 흥분이 바로 이런 거야, 그랬다.
'요절'에 이어 묘비명이라는 단어에 매혹되는 순간이었다. 노래는 처절하고 비장했다. confusion, epitaph, tomorrow. 가사는 띄엄띄엄 들렸지만 흥분은 금방 식어 버렸고 가슴이 아려오더니 눈물이 톡하고 떨어졌다. 가사를 전혀 몰라도, 가사가 들리지 않아도 상관없었다. 이 노래는 멜로디 자체에서 슬픔이 진하게 배어 나온다. 이 후 나는 내 묘비명에 새길 문장 짓기에 몰두하기도 했다.
지금의 나는 그 당시 우리 부모보다 나이가 더 많다. 부모의 나이가 40대 중반이라는 것을 전혀 인지하지 못하고, 서른이 되기 전에 죽는 것이 사람의 인생이라고 오해했던 철부지 중학생은 장래희망을 몇 번이나 바꾸면서 아직도 살고 있다. 우리 부모가 중학생 딸의 생각을 알았더라면 어땠을까? 우리 아이 또래의 사건, 사고 소식만 들어도 가슴이 덜컥 내려 않는 나는 이제야 부모의 심정을 알 것 같다. 어리석었던 내 생각을 부모에게 들키지 않은 것은 천만다행이다. 수백 명의 아이들의 목숨을 앗아간 세월호 참사에 내 가슴이 찢어진다.
2014년 다시 듣는 이 노래는 1982년보다 더 가슴이 아프다. '아무도 법을 지키지 않을 때 지식이란 죽음과도 같은 것, 모든 인간들의 운명은 바보들의 손에 쥐어져 있다'는 노래 가사처럼 세상이 되어버린 것 같다.
나 하나쯤이야 괜찮다고 하면서 규칙과 법을 지키지 않으면 또 다른 세월호가 침몰한다. 노래에서 킹크림슨은 자신의 묘비명을 혼란(confusion)이라고 했다. 어쩌면 우리 모두의 묘비명이 될 수도 있다. 두렵다. 그렇게 되지 않도록, 내일 울지 않으려면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글쓰기로 세상과 소통하고 싶은 주부입니다.
교육, 문화, 책이야기에 관심있읍니다.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