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류댠카 기차역드라큘라 성을 연상케 하는 슬류댠카 기차역의 모습. 왠지 모르게 음산한 분위기가 느껴진다.
정대희
무작정 찾아간 슬류댠카... 귀인을 만나다기차로 5시간을 달려 마침내 슬류댠카에 도착했다. 바이칼 호수를 따라 운행되는 동네열차를 탈 수 있는 출발지다. 열차의 정식 명칭은 환바이칼 열차(Circum-Baikal railway)이다.
오후 9시 무렵, 열차에서 내리자 칠흑 같은 어둠이 사방을 뒤덮고 있다. 기차역 주변의 한줄기 빛만이 어둠을 밝히고 있다. 불빛에 비친 기차역은 드라큘라 성을 연상케 하는 외형이다. 왠지 모르게 음산한 기운이 감돈다. 하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가까운 미래에 닥칠 난관을 전혀 예상하지 못한 채 마냥 들떠 있었다.
대합실로 향하는 문을 당기자 '삐거덕' 소리가 작은 기차역 안을 가득 메웠다. 텅 빈 대합실에 발을 내딛자 발자국 소리가 도드라지게 울려 퍼진다. 잠시, 멍한 상태가 됐다.
울란우데 숙소서 인터넷으로 슬류댠카에 관한 정보를 이 잡듯 뒤쳤다. 하지만 간단한 동네정보는 고사하고 숙박정보도 도무지 찾을 수 없었다. 오로지 환바이칼 열차와 관련된 정보가 전부였다. 일단 '몸으로 부딪혀보자'는 심정으로 이곳에 오긴 했으나 막막하다. 다른 기차역과 달리 와이파이도 잡히지 않는다. 무작정 떠난 여행이지만 무모한 여정은 아닐 거라 생각했다. 갑자기 걱정보다는 두려움에 신경이 곤두선다.
망연자실하고 있던 그 순간, '삐거덕' 소리가 들려왔다. 소리를 쫓아 눈을 돌리니 제복을 입은 군인 두 명이 대합실로 들어오고 있었다. 자동반사적으로 머리보다 몸이 먼저 움직였다. 나도 모르게 어느 틈엔가 그들 앞에 섰다.
"즈드라스부이쩨, 빠마기찌 므네 빠좔스떠(안녕하세요, 저 좀 도와주세요)."점퍼 안주머니에서 재빨리 회화책을 꺼내 띄엄띄엄 읽었다. 고개를 갸우뚱하는 그에게 회화책을 들이밀고 손가락으로 문장을 가리킨다. 그제야 러시아 군인은 이해한다는 표정을 짓는다. 얼굴 옆으로 두 손을 모아 가져가며, 잠을 자는 모습을 취했다. 러시아 군인이 고개를 끄덕인다. 행색을 보고 짐작했는지 '뚜리스트(여행객)?'라고 묻는다. 환희에 찬 얼굴로 '다(дa 네)'를 연신 내뱉었다. 그러자 '따라오라'는 손짓을 하며, 매표소로 날 이끌었다.
갑작스레 이루어진 만남이지만 러시아 군인은 내게 마치 하늘에서 내려준 귀인이었다. 그의 도움으로 역사 안에 마려된 게스트하우스에 머물게 됐다. 물론 대화가 어려워 애를 먹었지만 어쨌든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공간이 생겼다. 또, 환바이칼 열차에 관한 정보도 얻을 수 있었다.
내가 인터넷서 찾은 정보에 의하면 환바이칼 열차는 '화요일과 금요일'에 두 차례 운행됐다. 하지만 러시아 군인의 도움으로 찾은 열차운행 시간표를 살펴보니 '월요일과 목요일'에 운행된다고 적혀 있다. 도착한 날은 월요일 밤, 앞으로 3일간 이곳에서 머물러야 할 듯하다.
매표소 직원에게 숙박비를 지불하고 역사 안 게스트하우스로 향했다. 투숙객이 없어 두 개의 침대를 혼자 사용하게 됐다. 대충 짐을 풀고 나니 슬슬 허기가 느껴진다. 저녁을 굶었다.
다시, 러시아 군인을 찾아갔다. 그는 역사에서 근무하는 군인으로 보였다. 그에게 다가가 굶주린 배를 잡고 숟가락으로 떠먹는 시늉을 보였다. 역시, 바디랭귀지는 세계 공통어다. 그는 날 이끌고 철길을 가로질러 기차역 반대편의 한 건물로 데리고 갔다. 철도청 직원들이 밥을 먹는 구내식당 같았다. 식당에 들어서자 서너 명이 밥을 먹고 있다. 나를 보자 일순간 시선이 쏠린다. 주방에 있던 아주머니도 밖을 내다본다. 갑자기 러시아 군인에게 질문이 쏟아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