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닌 두상 앞에서...울란우데 시내에 위치안 소비에트 광장에는 세계에서 가장 큰 레닌 두상이 설치돼 있다.
정대희
"화장실 옆자리는 싫어요"... 기차표를 예약하다나갈 채비를 하고 노트북을 켰다. 인터넷 검색창에 '울란우데'라고 입력하니 다음과 같은 정보가 뜬다.
러시아 부랴티야 공화국의 수도. 인구의 다수가 몽골계. 몽골횡단철도(러시아~몽골 울란바토르~중국 베이징)의 시작점이자 시베리아 횡단철도와의 교착지역. 2011년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러시아 메드베데프 대통령의 정상회담이 개최된 도시. 세계 최대 담수량을 자랑하는 바이칼호수에서 남동쪽으로 100km 떨어진 곳.검색 결과를 보니 도시가 낯설게 느껴지지 않은 이유를 알 것 같다. 은연 중 여러 경로를 통해 알음알음 도시를 경험하고 있었다. 간단한 소지품만 챙겨 문밖을 나서려던 찰나, 홍콩에서 온 '청'이 직접 가이드를 해주겠다며, 따라 나섰다. 그의 영어실력에 비해 내 서툰 영어가 마음에 걸려 움찔했지만 시내구경이 한결 수월할 듯해 그와 동행하기로 했다.
숙소를 나와 먼저 기차역으로 향했다. 이튿날 슬류댠카로 떠나는 내 기차표를 예약하기 위해서다. 다음 목적지로 슬류댠카를 선택한 이유는 바이칼 호수를 따라 운행하는 동네열차를 타기 위해서다.
전날 추위에 떨며 40여 분 남짓을 거리에서 보냈는데, 오늘은 기차역까지 약 15분 만에 도착했다. 인터넷에서 정보를 모은 제본에 있는 '기차역에서 숙소로 가는 길' 정보는 알고 보니 멀리 돌아서 가는 길이었다. 구글 지도만 잘 살펴봤어도 청이 안내한 지름길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애먼 짓에 시간낭비하고 배낭만 무겁게 만들었단 생각을 하니 후회스럽다.
애써 부글거리는 속을 달래며, 출입문을 열고 대합실로 들어섰다. 꽤 북적거린다. 기차표를 예약하기 위해 매표소로 걸어가 열차정보가 적힌 메모지를 건넸다. 작은 구멍을 통해 메모지를 받아든 직원은 내 얼굴을 한 번 훑어 보더니 곧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기 시작한다.
러시아어를 못하는 청은 곁에서 상황을 지켜만 본다. 주뼛거리며, 크게 심호흡을 한 뒤 또 다른 메모지에 적어온 말을 읊었다.
"니 하추 라댬스 뚜알렛트"인터넷에서 찾은 "화장실 옆 자리는 싫다" 뜻의 러시아어다. 키릴 문자가 아닌 한글로 발음만 적어왔는데, 다행히 매표소 직원이 웃는다. 반응이 좋으니 새삼, 용기가 샘솟는다. 바디랭귀지로 추가 요구사항을 설명했다. 요구조건이 제대로 충족됐는지는 모르나 매표소 직원이 발급된 기차표를 건넨다. 괜스레 뿌듯한 기분이 든다.
기차표를 지퍼가 달린 점퍼 안주머니에 조심스레 넣었다. 염려스런 마음에 몇 번 더 눈과 손으로 확인했지만 '혹시나' 하는 불안감은 여전하다. 이상하게 낯선 공간에 덩그러니 떨어지니 자꾸 소심해진다. 움츠려든 마음이 멋쩍어 세차게 출입문을 밀며, 대합실을 벗어났다.
두 번째 행선지는 러시아 정교회로 정했다. 우뚝 솟은 금빛 지붕이 눈길을 끌어 홀린 듯 발길을 옮겼다. 그리스 산토리니 섬이 연상되는 외형이다. 교회 안은 일요일(현지시간 기준)이어서 그런지 꽤 사람들이 많았다. 출입구에 서서 실내를 스케치하듯 눈으로 훑어본다.
한국교회와는 사뭇 다르다. 생소한 실내는 생각보다 비좁고 긴 의자도 없다. 대신 기념품 가게로 보이는 곳이 입구 근처에 위치해 있다. 벽면에는 성모 마리아와 예수, 사제들로 보이는 그림들로 가득 채워져 있다. 물론 교인이 아닌 나로서는 인물들을 제대로 알 수가 없다.
하지만 청이 기념품 가게서 작은 양초를 서너 개 구입해 촛불을 밝혀 촛대에 꽂고 기도를 하기에 덩달아 초를 하나 사서 그를 따라한다. 여행이 무사히 끝나길 빌고 나니 한결 마음이 가볍다. 한편에서는 사람들이 각자 들고 온 통에 물을 받고 있다. 짐작컨대 성수를 길어 나르는 듯했다. 종교인이 아닌 내겐 그들의 모습이 낯설다. 나홀로 이방인이 된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