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춰 선 횡단열차철길 위에 세워진 시베리아 횡단열차
정대희
상상만 하던 시베리아 횡단열차에 올랐다. 열차가 어둠을 가르며 달리기 시작한다. 가속도가 붙자 차창 밖 풍경이 빠르게 변한다. 철길 위를 달리는 기차가 요란한 마찰음을 일으킨다. 침대형 좌석에 누워 열차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현실이 꿈만 같다. 흔들리는 객차에 익숙해지고 기차소리에 무뎌질 때 즈음, 눈꺼풀이 스르륵 감겨왔다. 곧 깊은 잠에 빠졌다.
과거로 향하는 기차, 오래된 시설에 "뜨악"17일, 시끌벅적한 소리에 눈을 떴다. 기차는 여전히 굉음을 내며, 달리고 있다. 차창 넘어 이름 모를 곳의 풍경이 펼쳐진다. 부산스러운 기차 안과는 대조되는 모습이다. 맞은편 좌석의 가족은 식사준비로 바쁘다. 어젯밤, 가벼운 눈인사로 안면을 텄지만 아직은 데면데면하다.
핸드폰을 켜 시간을 확인했다. 오전 9시가 조금 넘었다. 하지만 정확한 시간인지는 모르겠다. 몸은 블라디보스토크를 떠났는데 반해 시계는 여전히 그곳에 있다. 기차는 시간을 거슬러 계속 서쪽을 향해 달린다. 타임머신에 승차한 기분이다. 과거로 향하는 기차의 아침, 흐린 날씨마저 가슴을 설레게 한다.
창문에 뺨을 갔다댔다. 시원하다. 열차 안은 생각보다 덥다. 밤새 땀을 흘리다 새벽녘, 자다 말고 일어나 졸린 눈으로 꼼지락 거리며 내복을 벗었다. 추운 나라여서 그런지 실내 온도가 후끈후끈하다.
반대로 화장실은 싸늘한 표정을 짓게 한다. 좌변기를 보자 남자로 태어난 게 천만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세면대는 이름이 무색하다. "뜨악" 소리가 입 밖으로 저절로 새어 나온다. 순간, 어제 만난 파벨의 말이 생각났다.
"기차번호가 클수록 시설이 안 좋아."더 곤욕스러운 것은 화장실 앞에 전기 콘셉트가 설치된 것. 핸드폰과 노트북을 충전하기 위해선 화장실에서 흘러나오는 야리꾸리한 냄새를 견디며, 장시간 서 있어야 한다. 배터리 충전 수치가 낮아질수록 근심이 쌓이는 이유다. 짐 가방에 챙겨온 인스턴트 커피로 마음을 달래본다. 객차 안 온수기가 고마운 순간이다.
허나 '뭐니 뭐니 해도' 마음에 쏙 든 건, 달리는 기차 안에서 흡연이 가능하단 거다. 객차와 객차 사이 공간은 자유롭게 담배를 필 수 있는 열차내 유일한 장소다. 덤으로 이따금 새로운 만남의 기회를 갖게 되니 더할 나위 없이 고마운 공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