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 사고 시 방호용품.매 집집마다 구비되어 있어야 할 방호용품이 마을회관에 모여 있었다. 방사능물질을 5~30분 막아준다는 마스크와 고글, 방호복이 보인다.
황윤희
앞서 정수희씨도 경험을 전한다.
"고리에서 재난대비 훈련을 할 때 이동식발전차량을 대대적으로 홍보하더군요. 전원이 상실돼도 대비책이 있다는 거지요. 그런데 사람 모아놓고 홍보하는 자리에서 그 이동식발전차량이 작동을 안 하는 거예요. 행사 중에 대기하다가 방전이 되어버린 겁니다." 우스개 같은 이야기였지만 웃음으로 넘길 수 없는 에피소드였다.
생명가치와 이윤을 놓고 저울질할지도...실제로 고리원전 반경 2㎞ 내에 있는 월내리 주민들은 사고 시에 원전과 더 가까운 월내초등학교나 고리 스포츠문화센터로 대피하게 되어 있다. 원전과 최대한 멀어져야 하는 마당에, 참 요상한 매뉴얼인 것이다.
또 당장에 매 집집마다 구비되어 있어야 할 방호복도 마을회관에 박스 채로 방치돼 있는 상태다. 주민들이 개별적으로 가져가길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마을회관에 비치된 비상시 행동요령을 알려주는 책자도 상식수준이다. 즉 상황이 발생하면 귀가해 장독대 및 창문을 닫고, 가축 및 애완동물에게 충분한 먹이를 주고, 간단한 생필품을 챙겨 대피소로 가서 이름을 등록하라는 내용이다. 그 이후에 대해서는 없다.
당국의 재난대비에 대한 원전인근 주민들의 불신은 대단했다. 그들 스스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고 아무런 대책이 없으니 더욱 그러해 보였다. 경북의 경우 원전안전 전문가가 도 전체에 모두 4명에 불과하다는 보도가 있었다. 한국수력원자력과 정부가 원전 추가건설과 수명연장을 위해 들이는 돈과 노력만큼 재난상황 발생에 대비하고 있는지, 예산을 투자해 안전을 기하고 있는지 의심스러워지는 대목이다.
세월호는 갑자기 침몰하지 않았다. 그것은 오랫동안 축적된 부정부패와 태만의 결과물이었다. 거기엔 생명보다 이윤을 중시하는 자본이 있었고, 또 민간만큼도 대처가 안 되는 국가 재난대비 시스템이 있었다. 그리하여 원전에서도 크게 다르리라 기대하기 어렵다. 정수희씨가 말한다.
"세월호를 보면서 고리원전을 떠올리지요. 비슷하거든요. 그러면 사고가 발생했을 때 살아남을 수 있을까, 정부가 우릴 지켜줄 수 있을까 물어봅니다. 지켜주지 않을 거란 생각이 들어요. 어쩌면 권력과 자본은 사고가 나면 사람의 생명가치와 자신의 이득을 양쪽에 놓고 저울질할지도 모르겠습니다."생명과 이윤이 동등한 수준의 선택지가 될 수 있다는 것, 섬뜩한 이야기다. 설마 그럴 리가 있을까 싶지만 세월호 참사를 보면 그럴 수도 있겠다 싶다.
우리는 원전에 대해 약간 이상한 환상을 갖고 있다. 그것이 공공의 시설물이고 공공의 이익을 위해 존재한다는 그런 생각 말이다. 워낙 텔레비전 이미지 광고에 많이 노출되어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핵산업, 원전의 속살을 제대로 보면 그것은 특정세력이 추진하는 그들만의 '산업'임을 알 수 있다.
아울러 그들만의 '산업'의 목적과 동기는 '이윤창출'이다. 결코 당신의 이윤, 공공의 이익을 위해 복무하지 않는다. 그러니 핵산업세력이 이윤창출이라는 목적에 반해가면서 대중의 안전과 사람의 생명을 일선에 두고 돈을 투자하고 있으리라, 대비하고 있으리라 생각하기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