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고리3,4호기. 부산시청으로부터 25km 떨어진 곳에 지어지고 있는 신고리 3,4호기다. 원자로는 높이만 70m에 달한다.
황윤희
앞서 대한민국이 똥통도 아닌데 왜 더럽고 위험하고 게다가 비싼 핵발전소를 자꾸 짓느냐 했다(관련기사 :
세월호 침몰사고 악몽 위태위태... 경주가 무섭다). 돋보기를 들이대면 그 똥통의 중심은 원전이 건설되는 지역이다.
핵발전소의 둥근 원자로 지붕이 보이는 곳은 아예 부동산 거래가 되지 않는다. 땅값도 바닥이다. 원자로가 보이지 않더라도 반경 5㎞ 이내는 거의 다 그렇다고 한다. 땅이고 집이고 살 사람이 없는 것이다. 핵발전소 인근에 사는 주민들은 그래서 재산권을 행사할 수 없다. 주민들이 한국수력원자력에 집단이주를 요구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경주 월성 인근주민도, 부산 고리 인근주민도 모두 오랜 세월 집단이주를 요구하고 있다.
부산시청에서 겨우 25㎞ 거리에 고리원전이 있다. 고리 1~4호기, 신고리 1~4호기가 있고, 신고리 5, 6호기가 추후 지어질 예정이다. 한 곳에 10기의 원자로를 배치하는 경우는 오직 우리나라에만 있다.
고리원전은 행정구역상 부산시 장안읍과 울산시 울주군의 경계지역에 있다. 두 지역의 경계에 있는 까닭도 원전이 혐오시설이기 때문이다. 반대의 목소리를 지역별로 분산시킬 수 있는 장소, 비교적 약자들이 모여 사는 장소를 찾는 것이다. 또 인구가 많고 나름의 여론파워도 있는 도시민들에게는 멀리 있다는 느낌을 줘야 하므로 지역의 경계에 자리한다.
그럼 그런 핵발전소나 방폐장을 왜 해당 지역민들이 수용한 것일까? 그냥 수용한 것이 아니다. 전국의 많은 지역주민들이 1987년 체르노빌 사고 이후 오랜 세월 강력한 반대운동을 펼쳐왔다. 덕분에 전국적으로 핵폐기장이나 신규 핵발전소 후보지 선정은 10년 이상 계속해서 표류했다. 그러자 정부와 핵산업계는 2000년대 들어 추진전략을 바꾼다. 기존의 부지에 핵발전소를 추가 건설하는 방식을 취했고, 더불어 특별법을 제정, 지원금을 준다는 명목으로 지역 간 경쟁을 유도했다. 한마디로 돈을 풀어 찬성을 유도했다는 뜻이다.
핵발전소·방폐장 수용으로 받는 돈, 주민과는 멀어 경주 방사능폐기물처리장의 부지선정은 그런 식으로 이뤄졌다. 핵발전소나 방폐장의 본질은 사라지고 지원금 규모만 도드라져 지역 간 경쟁이 촉발됐고, 결국 경주 시민들의 찬성 속에 유치가 성사됐다. 경주시민들은 어차피 원전 안고 사는 마당에 방폐장 곁들이는 셈 친 것이다. 그리하여 방폐장 수용을 통해 경주시민들이 얻어낸 것은 특별지원금 3천억원과 한수원 본사 경주 이전이다. 그것으로 경주가 부자가 됐을까? 그리고 앞으로 부자가 될까? 현지 주민들은 고개를 설레설레 흔든다.
지원금의 대부분은 사실상 주민들의 피부에 와 닿지 않는다. 대부분이 사회간접자본투자, SOC사업에 쓰이기 때문이다. 도로 놓고, 다리 놓고 하는 일에 쓰이니 시민들은 3000억 원이라는 돈의 효용을 직접 느끼지 못한다. 게다가 돈이 쓰이는 곳도 어차피 다 도시계획상에 있는 사업이다. 다시 말해 지원금이 아니더라도 언젠가는 국가예산으로 추진될 사업이라는 것이다.
비유하자면 방폐장 수용의 대가나 핵발전소 수용의 대가가 '맛도 없는 음식을 다른 지역사람보다 조금 일찍 먹는 것'뿐인 셈이다. 지원금의 혜택을 느끼지 못하는 시민들의 심리를 우려하여 경주시는 도로 건설현장에 '방폐장 특별지원금이 이렇게 쓰입니다'라는 현수막을 걸어놓기도 했다고 한다.
한국수력원자력 본사 이전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이미 2010년 하기로 했지만 기한을 넘겨 2015년에나 가능할 것으로 보이는 본사 이전은 경주시민이 수혜를 누리기도 전에 지역에 깊은 상처를 주었다. 시내권과 방폐장이 입지지역 사이에 이전 장소를 두고 심각한 갈등이 야기된 것이다. 이는 지역의 정치가들이 부추긴 측면이 컸지만, 결과적으로 지역공동체는 해체되고 주민들의 마음은 돌이킬 수 없이 깊은 상처를 입었다.
본사 이전으로 경주에는 1000명 정도의 인구가 유입된다. 1000명의 인구유입이 방폐장 수용이 가져다줄 폐해를 상회할 만한 대가를 가져다 줄 것인지도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온 지자체가 대기업 유치를 무슨 로또처럼 떠들지만 사실상 그것으로 서민들이 대단한 수혜를 누렸다는 소리는 일찍이 들어본 바가 없다.
돈 갖고 작업하는 한국수력원자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