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환경운동연합의 이상홍 사무국장 이상홍 사무국장은 경주시민들이 오랜 세월 원전반대투쟁을 해오다, 지금은 포기를 내면화한 상태라고 전했다.
황윤희
현재 민간검증단이 참여해 한국수력원자력의 스트레스 테스트 내용을 검증하고 있다. 하지만 지난 3월, 민간검증단은 중간보고서를 공개하려고 했으나 원안위가 자신들에게 검토를 받아야 한다며 공개를 막았다고 주장했다. 독립적인 검증이 보장이 되지 않는다는 의미다. 민간검증단 중간보고서의 핵심내용은 "월성1호기가 후쿠시마 원전과 같은 극한 환경에 처했을 때 노심용융이나 폭발 등의 중대사고를 방지할 안전장치와 기본설계가 충분하다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었다. 게다가 월성1호기는 우리나라 원자력사고 레벨2에 해당하는 4건의 사고 중, 2건을 발생시킨 원전이다.
사실 많은 이들이 현재 월성1호기의 수명연장이 이뤄질 거라 짐작한다. 이유가 있다. 한국수력원자력은 월성1호기 압력관을 교체하기 위해 이미 2009년 7000억 원을 투자했다. 투자하고 나서 수명연장 심사를 신청한 것이다. 7000억. 이는 폐로비용보다도 높은 투자라는 보도도 있었다.
고개가 갸웃거려진다. 미리 어마어마한 돈을 들여 수리를 해놓고 수명연장 신청하는 게 정상적인 절차인가 싶은 것이다. 그러니 이런 합리적인 예상이 가능하다. '이미 그 엄청난 자본을 월성1호기에 투자한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이 수명연장을 포기하진 않을 것'이라는…. 한수원 관계자에게 그 요상한 절차에 대해 질문했더니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법이 그렇게, 수리하고나서 연장신청하게 되어있습니다." 국민에게 '믿음' 강요하는 원전마피아원자력마피아란 말이 있다. 치밀한 네트워크로 연결되고, 관련 정보를 모두 장악하고, 원전 관련 정책결정과 추진에 절대권력을 가지고 있는 세력, 그리하여 핵산업을 밀어붙이는 세력을 말한다. 원전정책을 결정하는 정부인사, 원전건설에 참여하는 대기업, 원자력을 전공한 학계인사, 원자력 관련 공공기관의 인사들이 여기에 해당한다. 우리나라의 원자력마피아는 세계최고라 할 만하다.
후쿠시마 사고로 각 나라의 원전마피아가 그나마 움츠려 들고, 전 세계가 하나같이 '탈핵'을 말할 때 이들은 오히려 '후쿠시마 사고의 위기를 기회로'라는 인상적인 슬로건을 내걸고 핵 산업에 더욱 박차를 가했다. 일본열도에서는 지금도 원전사고로 인한 국민들의 고통이 한참 진행 중이다. 후쿠시마 사람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방사능과 일생의 전쟁을 치러야 하는 마당이며, 원전반대 시위도 계속된다. 그런데 그들의 고통을 기회로 삼겠다니…. 그 발상이 무척이나 놀랍다.
이들 원전마피아가 핵산업을 반대하는 사람들에게 늘 하는 말이 있다. 대충 이런 식이라고 했다.
'우리나라 원전은 안전하다, 그리고 이런 전문적인 분야에 대해 민간이 뭘 아느냐, 그러니 우리를 믿어라. 우리들이 하는 말을 믿어라.'
정보를 틀어쥐고는 공개도 하지 않고, 보여줘 봐야 민간이 뭘 아느냐고 반문하는 그들, 그리고 무조건 믿으라고 말하는 그들. 그러한 강요는 이상하다. 믿음과 신뢰는 서로 정보를 공유하고 개방하고 소통하는 가운데서 생겨난다. 그런데 모든 통로를 차단하고 믿으라고만 강요하는 것은 사이비 종교단체와 다름이 없다.
지금 국민들이 가지는 의심은 합리적인 것이다. 끊임없이 불신을 야기하는 것은 바로 그들인 것이다. 뇌물을 주고받고, 부품 시험성적서를 위조하고, 결정해놓고 짜맞추기 심사하고, 사고와 고장을 은폐하는 일이 비일비재한데 국민들이 그들이 말하는 안전을 믿을 수 있겠는가? 요컨대 그들 원전마피아는 무척 적극적으로 엘리트주의를 실천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그들은 아마도 이렇게 생각하고 있지 않을까?
'국민들에게 무슨 설명을 할 것이냐? 공적자금 갖고 우리들끼리 알아서 은밀하게 결정하고 추진하면 그뿐…. 우매한 대중들은 그저 우리를 믿고 따르라.'
그 누구도, 핵발전소의 항구적인 '안전' 말하지 못한다사전신청을 통해 월성1호기를 방문할 수 있었다. 인적사항을 사전에 대고 신분을 증명하고 지문을 찍고 검색대를 통과했다. 그곳에서 두 시간 정도 한수원 홍보팀 관계자의 설명을 들었다. 원자로 격납고 내부는 사진으로 만족해야 했지만, 격납고에 딸린 발전소의 터빈과 배관을 직접 보았다. 핵발전소는 엄청나게 복잡하고도 거대한 구조물이었다. 코앞에서 높이 45m의 원자로 격납고를 올려다보고 있자니 만감이 교체했다. 괜스레 온몸에 방사능이 달라붙은 것처럼 몸이 간지럽고 목이 따가웠다.
한수원 직원이 반복해서 말한 것은 그저 '안전하다'는 것이었다. 사실 한수원 직원이라면 누구나 방문자에게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내게 그것은 과학적 사실이라기보다는 개인의 신념처럼 들렸다. 안전하다가 아니라, 안전해야 한다는 것. 과연 그 안에서 근무하는 직원이 그렇지 않음을 사고할 수 있을까? 또 그렇게 느끼더라도 그것을 말로 할 수 있을까?
나는 직원의 말을 경청했지만 사실 그곳에서 '안전'을 볼 수도, 이해할 수도 없었다. 또 마찬가지로 '안전하지 않음'을 볼 수도 없었다. 왜? 전문가가 아니어서가 아니다. 그것은 결코 한 사람이 볼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그렇다. 수백만 개의 부품이 들어가고, 수백 킬로미터의 전선이 들어가고, 수 킬로미터의 배관이 설치되는 구조물을 속속들이 알아 안전을 객관화할 수 있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또 핵발전소는 수백, 수천 명의 사람이 운영하는 시스템을 통해 가동된다. 도대체 누구라서 그 많은 이들의 행동과 동작의 문제없음을 매순간 확신할 수 있다는 말인가? 게다가 원전비리까지 끊이지 않는 마당에. 그러하니 대한민국의 단 한 사람도, 이 땅 23기 원전, 그리고 앞으로 가동될 11기 원전의 '항구적인 안전'을 확신할 수 없다.
핵발전소는 방사능과 사용후핵연료 처리, 예측할 수 없는 자연재해 등, 근본을 생각하면 인간의 통제를 벗어나는 구조물이다. 자본과 절대권력이 융합해 굴리는 거대한 수레바퀴지만 사실상 그 바퀴가 굴러가는 방향은 그 누구도 결정하지 못한다. 원자로에 들어가 보았다는 한 사람은 '사람이 이런 것을 운영할 수 있나' 하고 놀랐다고 했다. 그 복잡함에 기가 질렸던 것. 그러니 누군가 핵발전소의 '안전'을 말한다면 그것은 그저 그의 바람, 혹은 오만에 가까울 것이다.
우리나라에 떠있는 23기의 또다른 세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