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2월 21일 오후 열린 '한진중공업 복직자 최강서 열사 경과와 대책' 기자회견 모습.
정민규
"민주노조 사수하라. 손해배상 철회하라. 태어나 듣지도 보지도 못한 돈 158억. 죽어라 밀어내는 한진 악질자본."
2011년 2월 한진중공업에서 정리해고 되었다가 이듬해 11월 일터로 돌아온 최강서(당시 35세)씨는 재입사 3시간만에 무기한 강제휴업을 당한다. 노조의 조직차장이었던 그는 2012년 12월 21일 노조 대회의실에서 목숨을 끊는다. 그는 손배소 철회를 유서로 남겼지만, 사측은 2014년 1월 기어이 판결을 받아내고 만다.
한진중공업 노동자들은 왜 소송을 당했을까. 부산 영도구 소재 한진중공업은 경영상태 악화 등을 이유로 2009년부터 정리해고를 시도했다가 노조의 반발로 잠정 중단했다. 이듬해인 2010년 사측은 노조에 400명 감축계획을 통보하고 정리해고를 단행했다.
노조는 임단협 성실교섭과 정리해고 철회를 요구하며, 그해 12월 영도조선소 점거파업에 돌입한다. 사측은 이에 맞서 2011년 금속노조 한진중공업지회(이하 지회)와 채길용 당시 지회장 등 11명을 상대로 손배소를 제기했다(사측은 애초 청구액 51억여 원으로 제소했다가 도중에 158억 원으로 늘렸고, 2011년 12월에는 지회를 제외한 개인에 대한 소송은 취하했다).
법원(부산지법 7민사부, 재판장 성금석 부장)은 지난 1월 원고일부승소 판결을 내렸다. 사측의 청구액 158억 원 중 59억 원을 노조가 배상할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재판부의 판단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사측의 정리해고는 적법, 노조의 파업은 불법'이라고 할 수 있다. 재판부는 2008년경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로 한진중공업이 심각한 경영난을 겪으면서도 이를 극복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온 사실을 인정해준다. 또한 정리해고가 ▲긴박상 경영상 필요에 의해서 이뤄졌으며 ▲해고회피 노력을 다하였으며 ▲공정한 기준에 따라 대상자를 선정하고 ▲근로자 대표와 성실하게 협의를 하는 등 요건을 모두 갖추어 적법하다고 보았다.
반면, 노조의 파업은 목적이나 수단 모두 정당하지 않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노조가 경영주체의 고도의 경영상 결단에 속하는 사항인 정리해고 자체를 반대하기 위하여 파업에 나아갔다고 할 것이므로, 목적의 정당성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경영권을 상당히 '존중'하는 기존 대법원의 판례를 그대로 수용한 결과다.
파업의 수단에 대해서도 "영도조선소에 대한 관리지배를 배제한 전면적, 배타적 점거로써 폭력이나 파괴행위를 수반하는 등 반사회성을 띤 행위"라고 보았다.
한진중 노조 59억 배상 판결은 1심에서 확정이에 대해 지회는 "2010년 당시 파업은 적법한 절차에 따라 조합원 총회를 거쳐 실시한 합법파업"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노조는 파업의 목적에 대해서도 "임단협 교섭과 관련된 조합원들의 처우개선이 주목적이었다"고 반박했다. 노조는 "단체협약 갱신 교섭을 하는 자리에 회사가 일방적인 구조조정안을 의제로 들고 교섭을 계속적으로 요구하며 교섭을 해태하였다"며 "부득이하게 파업을 집행할 수밖에 없었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재판부는 "단체협약 및 임금협약 체결에 대한 이견이 파업의 원인 중 하나라고 하더라도, 주된 목적은 정리해고를 반대하고 저지하기 위한 것"이라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노조가 조선소를 점거하면서 선박건조에 차질을 빚었다고 사측이 청구한 금액 중 선박이동비용, 장비임차료, 도장비용 등 사외작업비용, 지체상금(납기일 지연 비용) 등 74억 원을 손해액으로 산정했다. 이중 회사의 책임을 일부 인정하여 80%인 59억 원을 노조가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지회는 판결 직후 항소장을 제출했으나, 인지대를 납부하라는 법원의 명령에 응하지 않아서 항소장이 각하된 상태다. 따라서 1심 판결은 확정된 것으로 확인됐다. 그렇다면 이후가 문제다.
노사는 최강서 조합원 사망이후인 2013년 2월 22일 쌍방 민형사사건 취하 등에 합의한 바 있다. 그러나 합의서에는 파업손배소 사건에 대해 명시하지 않았다. 다만 별도의 회의록을 통해 "회사가 제기한 158억 손해배상 청구소송(1억 소송건 포함)은 확정판결 이후에 지회와 반드시 합의하여 처리한다"는 합의사항을 남겼다.
지회 쪽은 이를 사측이 사실상 소송을 철회한다는 뜻으로 받아들였다. 박성호 지회장은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최근 회사 쪽 책임자를 만났는데 회사는 항소를 하지 않고, 자신의 임기동안 (판결에 따른 강제) 집행을 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확인했다"고 밝혔다. 박 지회장은 "항소심에서 불법파업이 아니라는 점을 밝히지 못한 아쉬움은 남지만, 최종적으로 금속노조와 상의해서 소송을 일단락짓기로 결론내렸다"고 덧붙였다.
한진중 손배사건은 확정된 판결 자체가 무효가 되는 것은 아니어서 노사합의에 대한 효력을 놓고 논란의 여지도 있다.
법원 "쌍용차 정리해고 반대파업은 경영권 침해... 불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