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대를 한 아들과 약 보름간 같이 지냈는데, 하루 하루가 참 소중하고 행복했습니다.
이승숙
맥주를 한 잔씩 앞에 놓고 우리 가족은 갑자기 숙연해졌다. 좀 전까지 손가락에 묻은 양념까지 핥으면서 닭볶음탕을 먹던 화기애애함은 어디로 다 사라졌는지, 모두 우리 집의 막내인 아들의 입만 쳐다본다. 예년과 다름없는 연말연시이건만 올해는 왜 이리 엄숙해졌을까.
"아들, 내년 계획을 한번 들어보자."남편의 그 말에 좀 전까지 재미있는 이야기로 분위기를 달구던 아들이 반듯하게 앉으며 정색을 한다. 우리도 덩달아서 바르게 앉으며 시선을 집중했다.
우리 나이로 25살, 만으로 아직 채 24살도 안 된 아들이 다니던 학교를 한 해 쉬고 본격적인 취직 시험공부에 들어가겠다고 한다. 벌써 이것저것 알아보고 온 눈치다. 자기 계획을 이야기하며 부모님을 안심시키려고 한다. 미래에 대한 불안과 걱정은 아들 역시 우리와 진배없을 텐데도 앞으로의 계획을 이야기하는 모습을 보니 걱정보다는 희망이 보이는 듯하다. 취업을 하기 위한 공부이니 어찌 놀이 삼아 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컴퓨터와 스마트폰도 없애겠다고 한다.
일 년 반 동안 학원을 다니며 공부를 하겠다는 아들의 말을 들으니 흐뭇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계산을 하게 된다. 그러면 학원비는 얼마나 들어갈 것이며 또 그 외의 비용들까지 합하면 한 달에 부쳐줘야 할 돈이 얼마나 될까. 적은 돈은 아닐 것이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돈 이야기를 하고 말았다.
그러다가 아차 싶었다. 그깟 돈이 대수겠으며 돈을 들이지 않고 되는 일이 어디 있더란 말이냐. 그보다는 아들이 힘들지는 않을까, 또 내가 해줄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생각해보지 않고 돈부터 계산하다니. 참으로 속 좁은 엄마라는 생각에 부끄러워, 마저 하려던 말을 얼른 안으로 삼켜버렸다. 이런 내 마음을 읽었는지 "어머니, 돈이 많이 들 텐데 힘들지 않으시겠어요?" 하며 오히려 우리를 염려한다. 그래서 우리 부부는 "돈 안 들이고 되는 게 있겠니? 그보다는 건강도 챙겨가면서 공부하도록 해라" 하며 기운을 북돋워주었다.
아들은 밝고 유쾌해서 같이 있는 사람을 기분 좋게 해주는 능력이 있다. 요리에 대해서도 탁월한 감각이 있어서, 라면 하나를 끓여도 그 애의 손만 가면 맛이 달라진다며 누나인 딸은 늘 칭찬을 했다. 상대의 마음을 읽고 배려하는 넉넉함도 아들에게는 있다. 그래서 함께 있으면 나는 늘 귀부인이 돼서 대접받는 호사를 누린다.
아들을 내 마음에만 맞추려... 그건 욕심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