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판의 변천사가을이에겐 '너무 저렴한 제품'이라는 사장님의 조언을 들을 걸 그랬다.
박혜림
[증언③] "더러운 이불을 바꿔주려 했는데 가을은 불안한 기색으로 안절부절 못했다. 잠시 후, 가을이는 옆 견사의 친구 이불을 철창 안으로 있는 힘껏 끌어당겨 궁둥이를 대고 앉아있었다. 좁은 틈새로 끄집어냈으니 당연히 이불은 손바닥 반만 했다. 찬 바닥에 앉기가 무지 싫었나 보다."
알고도 남는다. 가을의 잘 준비는 요란하다. 우선 누우려는 바닥이 얼룽벌룽할 때까지 긁고 또 긁는다. 그저 맨바닥이어도 빠트리지 않고 제자리에서 뱅뱅 돌아가며 가상의 이부자리를 정비한다. 어쩔 때는 내 베개를 제 침대 삼아 안락하게 누워있고, 제 몸 누이기 꼭 맞는 수건이나 방석은 귀신같이 알고 편히 취한다. 외모는 다소 근본 없어 보일지라도 행태는 타고난 공주마마이지 않은가.
넌 누굴 위해 그런 미소를... 뭐지? 이 기시감이런 증언들을 접하고도 갈증이 남을 때도 있다. 그러면 가을이가 있던 보호소의 인터넷 카페에서 그의 옛 자취를 더듬을 수 있다. 귀찮은 건 딱 질색이지만 가을이의 과거를 찾는 일에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몰입한다.
옛날 옛적에 가을이는 웃는 모습이 예뻐 카페의 대표 모델이기도 했고, 꽤 많은 대모(지속적인 후원자)들의 도움을 받아왔다. 그간 알 수 없는 분들의 사랑에 늦게라도 고마움을 전한다. 그러나 허름한 옷을 입고 있거나 눈가에 눈곱이 껴있는 모습을 보면 가슴이 미어진다. 관심받지 못하는 어린 것들은 얼마나 애잔한가. 난 지나가는 강아지조차도 이런 모양새면 달려가 단장해준다.
그러다 두둥! 가을이 두 발로 서서 누군가를 반기는 사진 앞에서는… 기분이 뭐랄까. 참 묘해진다. 이렇게 해맑은 미소를 과연 누구에게 지은 걸까. 누군지 엄청 행복했겠다. 근데…, 이 기시감은 뭐지? 그렇다. '내 남자의 과거를 목격했을 때'와 비슷한 감정이다.
비유가 좀 오그라들긴 하지만, 사랑에는 한심하게도 사악한 질투심이 꼭 끼어들지 않나. 그의 찬란했던 과거를 현재의 내가 결코 가질 수 없음에 속상해하던 나. 바보가 아닐 수 없다. 과장을 조금 더 하자면, 가을이가 건강하고 쾌활했던 '젊은 시절'을 나와 함께 보내지 못한 게 속상한 것이다.
과거야 어찌됐든... 지금에 충실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