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라나시 새벽의 보트
Dustin Burnett
더스틴 옆에는 숙소에서 본 적이 있는 영국 여자가 앉아있었다. 신경질적인 낯빛을 두르고 있는 여자였다. 인도 여행 2개월째인 여자는, 바라나시에 너무 오래 체류한 탓에 오늘 밤 당장 다질링으로 떠나러 왔다고 했다. 왕복 40루피에 흥정을 하고 사이클 릭샤를 대기 시켰다고 하길래, 우리 차례가 왔을 때 먼저 일을 보라고 양보해 주었다.
"오늘 밤 다질링으로 가는 기차 조회 부탁해요."바라나시를 떠나고 싶어 안달이 났다는 듯, 여자가 초조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저씨는 이마에 주름을 하나 더 잡더니 거뭇한 키보드를 타타탁 두드렸다. 키보드에 쌓인 먼지가 다시 한 번 흩날렸다.
"피니쉬! (Finish, 표 없소!)"사형선고다. 여자는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잠시 감정을 정리했다. 그러더니 '다음!'하고 외치려는 아저씨의 입을 막았다. 일말의 희망이라도 있는 걸까.
"정션역 말고 무굴역 있죠? 여기서 12km 떨어진 역. 거기에서 오늘 6시 30분에 기차가 있을 거라고 듣고 왔어요. 그 표 조회해주세요."아저씨가 다시 표를 조회했다.
"노 티켓!"여자는 믿을 수가 없다는 듯 모니터를 확인했다.
"9시와 11시 사이 표를 조회하셨잖아요. 6시 반에 표가 있을 거라고 했다고요. 그 시간 표로 조회해 주세요."답답해진 여자가 따지듯이 말했다. 그런데도 무슨 심산인지 아저씨는 자꾸 9시와 11시 사이의 표를 조회했다. 여자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그 꼴을 보고 있는 우리도 초조하긴 마찬가지였다. 그때, 사무실 문을 열고 주전자를 든 한 남자가 들어왔다.
"짜이 짜이 짜~이~!"영국 여자는 성난 얼굴로 말을 들어 먹지 않는 아저씨를 들들 볶아댔다. 그러거나 말거나. 아저씨는 짜이 보이에게 짜이를 한 잔 받아들었다. 그러고는 굵다란 보석 반지가 끼워진 통통한 검지를 여자의 얼굴 앞으로 올려세우더니 말했다.
"원 미닛."그리고 흐르는 정적. 황당해 멈춰버린 여자의 얼굴 앞에는, 잠시 기다리라고 올린 아저씨의 뚱뚱한 검지가 거두어지지 않은 채 그대로 세워져 있었다. 원 미닛을 요구한 아저씨는 그 1분간, 이 사무실 안의 혼동은 모두 잊었다는 듯, 특히 다질링으로 가는 표 같은 건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듯, 평온한 표정으로 한 곳만을 응시하며 온몸과 마음을 다해 짜이 마시기에 전념했다. 짜이를 마시는 이 1분 만큼은, 이 세상 모든 것들이 짜이를 위해서, 짜이를 마시는 이 순간을 중심으로 돌아가고 존재한다는 듯이.
나는 이곳에 있지만 이곳에 있지 않은, 짜이를 마시는 행위에 초 집중을 한, 짜이라는 명상에 잠겨 현 세계를 초탈한 듯한 아저씨의 모습에 빨려들었다. 아저씨의 모습은 가히 성스럽기까지 했다. 자신의 짜이 타임을 위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든 뭐가 어떻게 되었든 모든 것을 잠시 내려놓을 수 있는 휴식에 대한 극한 존중. 자신의 몸과 정신이 어떻게 되었든, 이웃의 누가 어떻게 되었든 간에 노동과 자본에 대한 극한 존중만 있는 세상에서 온 나에게는 신비로운 모습이었다.
잠시 시간을 멈춰놓은 듯 뜨거운 짜이를 마시던 아저씨는, 짜이 드링킹 의식을 마치자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더러운 모니터로 다시 시선을 옮겼다.
"있소! 표!"짜이를 마시는 동안 무슨 일이라도 생긴 것일까. 일 초라도 빨리 예매하지 않으면 사라져버릴 것 같았던 표가, 뜨거운 짜이 한잔을 1분간 여유롭게 마시고 나자 짠하고 나타났다. 여자는 다행이라는 듯 만족한 표정으로 표를 집어들고 사무실을 나섰다. 하지만 그토록 원하던 다질링으로 가는 표를 거머쥔 여자의 표정도, 짜이를 마시는 아저씨의 만족스러운 표정을 따라갈 수는 없었다. 하긴, 다질링으로 가는 표가 뭐 그리 중요한가. 다 지나가고 사라지고 변하는 것들인데. 어쩌면, 지금 이 순간 1분간의 짜이 휴식보다 중요한 일 같은 건 이 세상에 없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