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다가 첫 설법을 전했다는 곳에 세워진 다멕 스투파(Dhamek Stupa)
Dustin Burnett
사르나트는 보드가야의 보리수 나무 아래에서 깨달음을 얻은 붓다가 처음으로 설법(초전법륜경, Dhammacakkappavattana Sutta)을 펼친 곳이다. 붓다가 태어난 네팔의 룸비니, 깨달음을 얻은 인도 동부의 보드가야, 그리고 열반한 장소인 쿠시나가르와 함께 불교의 4대 성지로 꼽힌다.
6세기에 세워진 다멕 스투파(Dhamek Stupa)는 붓다가 깨달음을 얻은 후 6년간 같이 고행을 수행하던 5명의 비구에게 처음으로 설법을 펼쳤다는 곳을 기념하고 있다. 붓다로부터 가르침을 받고 깨달음을 얻은 5명의 승려는 승가(출가수행자의 교단)를 결성하고 붓다의 가르침을 전파한다. 얼마 있지 않아 60명으로 늘어난 승려들은 인도 전역으로 보내진다. 고통과 번뇌의 원인인 집착을 버리고 생사윤회에서 벗어나는 방법을 제시한 불교의 가르침. 그것이 처음 세상으로 나와 전파된 곳이 바로 이곳, 사르나트다.
인도에서 불교의 전성기는 인도 최초로 통일국을 형성했던 찬드라굽타의 손자, 아소카 왕이 통치하던 시절이었다. 폭력적이고 무자비한 군주로 이름났던 아소카 왕은 무력을 동반한 정복 끝에 현재 인도 땅의 대부분을 아우르는 지역을 통치하게 된다. 왕국을 계속 넓혀가던 아소카 왕은 즉위 8년째 되던 해, 막강한 부를 가진 칼링가 왕국과 치열한 전쟁을 치른다.
전쟁은 아소카 왕이 이끄는 마우리아 왕조의 승리로 끝났다. 더 넓은 왕토와 권력을 거머쥐게 되었다. 하지만 칼링가 전쟁에서 벌어진 전쟁의 비참함과 죄악, 생의 고통을 지켜본 아소카 왕은 내면의 변화를 겪게 된다. 이에 왕은 불교의 가르침을 받아들이고, 무력에 의한 통치가 아닌 다르마, 즉 법에 따른 통치를 주장한다. 그러면서 인도 전역에 '다르마에 의한 통치'를 명문화한 아소카 석주를 세우게 된다. 사르나트 고고학 박물관에 전시된 사르나트의 아소카 석주가 그중 하나다. 지금은 기단부의 흔적만 덩그러니 남아 표지판을 유심히 보지 않고서는 알아보기조차 힘들다.
기원전 3세기 아소카 왕의 통치 아래 비약적으로 팽창한 불교는 인도 각 지역을 넘어 스리랑카, 미얀마 등 국외로까지 전파되지만, 8세기 중반 이후 인도땅 안에서는 그 내용이 심하게 변질된다. 힌두교의 성장과 이슬람교의 박해로 인해 불교와 관련된 많은 유물은 아소카 석주와 같이 기단부만 덩그러니 있는 모습으로 남아있게 된다. 현재 인도의 불교 신자는 인도 전체 인구의 1%에도 미치지 못한다. 붓다의 사리가 보관되어 있었다는 다마라지까 스투파(Dharmarajika Stupa)는 본래의 위엄있는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밑부분의 흔적만이 남아있다. 지금의 인도 사회에서 불교의 위치를 보여주기라도 하듯이. 본래 30m 높이에 달했다던 이 스투파의 대부분은 18세기에 바라나시의 건축물을 짓기 위한 재료로 사용되었고, 붓다의 사리를 포함한 유물은 모두 갠지스 강으로 버려졌다고 한다.
옳고 옳지 않음이란 대체 뭐란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