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시크릿가든>의 한 장면. 왼쪽이 재벌3세 백화점 사장 김주원 역의 현빈.
SBS
"이게 최선입니까? 확실해요?"
백화점 사장은 다 <시크릿 가든>의 김주원(현빈 분) 같은 줄 알았다. 1주일에 2번 출근해서 직원들이 내놓은 기획안에 "최선입니까?"라고 소리만 치면 할 일 끝나는….
현실은 달랐다. 우리 백화점 점장은 매일 출근했다. 오전 11시경이면 어김없이 백화점을 순회했다. 뒤에 줄줄이 간부들을 데리고 다니지도 않았다. 직원들이 다같이 앞에 나가 머리 숙여 인사할 필요도 없었다. 어느 날은 혼자서 쑥 우리 매장에 들어 와서는 신상품이 어떤 게 들어왔는지, 제품의 원산지가 어디인지를 묻기도 했다. 고객처럼 물어서 나는 가고 나서야 그가 우리 점 사장인줄 알았다. 혜수 언니는 점장이 창고에도 들어와 정리가 잘 돼 있는지 확인할 때도 있다고 알려줬다.
점장은 밥도 직원식당에서 먹었다. 처음 우리와 같은 3천 원짜리 식판밥을 먹고 있는 점장을 보고선 신기해 한참을 쳐다보기도 했다. 이게 다 대중매체 탓이다. 드라마에선 사장, 본부장이 죄다 젊은 재벌 2세에 좋은 차 타고 경양식집에서 칼질만 하는데 실제는 현빈보다 훨씬 나이 많은 중년이 지하 식당에서 식판을 들고 있었으니까…. 얼른 판타지에서 벗어나야 했다.
백화점 교육 때 강사가 정직원들은 한 달에 몇 번 직원식당을 이용하는지를 보고한다고 툴툴댔는데 점장의 경영방침 중 하나인가 보다. 만날 직원식당에서 밥을 먹는 점장에 대해 누군가는 "좀생원 같다"고 말하기도 했지만 난 소탈해 보여 좋았다. 물론 만날 같이 먹어야 하는 비서실 직원들은 죽을 맛이겠지만….
백화점의 모든 결론은 '매출액' 좀 일해보니 매장부터 지하 식당까지 백화점 사장이 신경 쓸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그 모든 일의 종착지는 '매출 증대'라는 결론도 쉽게 내릴 수 있었다. 매달 전국 몇 개 점 중에서 몇 등인지, 같은 지역의 다른 백화점들과 비교해서 매출액이 어떻게 되는지가 수치로 나오니 그럴 수밖에.
행사 때가 되면 사무실에서는 근처 백화점이 전단에 명품 가방 세일을 집어넣어 특수를 올렸다고 우리 매장에서도 그렇게 싸게 내놓을 제품이 없는지를 묻곤 했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본사에서 정하는 정기 세일 외에는 특가로 내놓을 재고가 없다는 답으로 사무실의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했다.
백화점 점장이 창고를 둘러보는 것도 정리가 잘 돼 있는지를 점검하는 것도 있지만 재고를 얼마나 갖고 있는지, 그래서 할인행사를 할 수 있는지를 파악하는 거라는 걸 나중에 알았다. 백화점 행사장 매대에 놓인 상품들은 이렇게 각 매장 창고에서 우연히, 혹은 억지로 찾아낸 귀한 분들이다.
세일 기간이면 '매출' 관련 직원들의 수다가 이어졌다. 지난 주말 신사복 행사장에서 1억 원어치가 팔렸네, 여성복 쪽은 목표액보다 매출이 적게 나와서 비상이 걸렸네 하는 식의 이야기들이 들려왔다. 직원들도 백화점 사장 못지않게 매출을 걱정했다. 휴게실에 있으면 "왜 이렇게 손님이 없지. 애가 탄다, 애가 타"라며 한숨을 쉬는 이들이 많았다. 꼭 매출에 대한 위에서의 압박 때문만은 아니었다. 노동의 결실이 '0000000원'처럼 동그라미 숫자로 평가되는 직업의 숙명이자 직업의식처럼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