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9년 방문한 북측 특사 조의방문단. 김기남 노동당 비서, 김양건 노동당 통일전선부 부장, 원동연 통전부 부부장도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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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전선은 북한 노동당의 통일노선과 정책을 옹호하는 기구로 1949년 6월25일 남북 정당·사회단체 연석회의에서 결성됐다. 이 기구는 남한에서 발생하는 주요 사건에 대해 성명과 담화 등을 발표하는 대남선전활동을 하고 있다.
아태평화위는 아태지역의 미수교국과 교류를 강화하기 위해 1994년 5월 통전부 산하에 구성됐다. 이 기구는 미국, 일본 등과 관계 개선을 위한 창구 역할을 했다. 1990년대 후반부터는 남북간의 각종 민간교류와 경제협력 업무의 집행기관 역할을 했는데 금강산 관광사업을 추진한 현대그룹의 파트너이기도 하다. 위원장은 통전부장이 겸한다.
민화협은 1998년 6월 8·15민족대축전 제의에 앞서 북한의 경제·사회·문화계 단체와 인사들로 구성한 단체다. 민간급 성격을 부각하면서 남측 민간단체와 교류 창구로 활동하고 있다.
조국통일연구원은 1959년 12월 남조선연구소로 출범했으며 1978년 통전부가 출범하면서 산하기구로 흡수됐고 1992년부터 현재의 명칭인 조국통일연구원이라는 명칭을 쓴다. 한반도 주변 정세를 분석하고 백서 발간 등을 통해 남한 정부를 비난하는 역할도 수행한다.
이처럼 다양한 대남기구가 있지만 역시 가장 수위에 있는 조직은 통전부라고 할 수 있으며 북한의 대남정책결정에서 통전부장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대남정책결정의 최고 실세는 김양건... 원동연도 베테랑따라서 현재 북한 대남정책결정의 최고 실세는 김양건 통전부장이라고 할 수 있겠다. 김 부장은 당 국제부에 오래 근무하며 외교의 일선에 섰던 중국통으로 국제부장을 지내며 국제적 감각을 키웠다. 그는 2005년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정동영 당시 통일부장관의 '6·17 면담'에 국방위원회 참사 자격으로 배석한 것을 시작으로 대남사업 무대에 본격적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이어 2007년 3월에 통전부장이 됐고 2010년 열린 당대표자회에서 대남 담당 비서에 올랐다.
2007년 10월 열린 노무현 당시 대통령과 김정일 위원장간 회담 성사의 주역이기도 한 김 부장은 정상회담 개최 직전인 9월말 서울을 극비 방문해 정상회담 의제를 합의하고 노무현 대통령을 예방했다. 또 정상회담 직후인 11월에도 정상선언 이행 방안 논의를 위해 방한, 노 대통령과 주요 당국자들을 면담하고 산업시설도 둘러봤다.
그는 2010년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서거 때 북한의 조의특사단으로 김기남 당 비서와 함께 서울을 방문해 이명박 대통령을 예방하기도 했다. 또 지난 4월에는 통행제한 조치로 위기감이 고조되는 개성공단을 직접 방문했으며 이어 본인 명의의 담화를 통해 북한 근로자의 전원 철수조치를 밝히기도 했다.
김 부장과 더불어 원동연 통전부 부부장도 20여년간 남북간 주요 고위급 회담과 접촉에 빠짐 없이 관여해온, 대남분야 베테랑 실세로 분류된다. 조국통일연구원 부원장을 겸하고 있는 그는 2007년 2차 남북정상회담과 총리회담 때 막후에서 합의문안을 조율할 정도로 이론가적 역할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일성종합대학 경제학부를 졸업했으며 1990년 남북고위급회담 때 수행원으로 1차부터 7차 회담에 참가했고 1992년 고위급회담 때는 군사분과위원회 위원으로 나섰으며, 1995년 7월 베이징 2차 쌀회담 때는 북측 대표를, 9월 3차 쌀회담에서는 대변인을 맡았었다. 그는 또 2002년 10월 북한 경제시찰단의 일원으로 남쪽을 방문했을 때 시찰단의 실무 현안을 책임지는 현장 코디네이터 역할을 했으며 조평통 서기국 부장 등 여러 직책을 갖고 있다.
주변국과 대화 나선 북한... 장성택 역할 절대적인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