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희 여사가 만든 말뚝이꼭두를 받고 좋아하는 백남준. 1985년 청담동 백남준 작은누이 댁에서 찍은 사진.
이경희
- 백남준은 '작곡가'에서 '비디오 아티스트'로, 이경희 여사는 '약학도'에서 '꼭두극 연출가'로 변신하셨는데 그런 면에서 두 분 비슷한 점이 많네요? "글쎄요. 그리고 보니 그렇네요. 나도 <백남준, 나의 유치원 친구>를 낼 때 우연이기는 하지만 우리 둘은 많은 면에서 닮아있어 거기에 뭔가 뜻이 있는 것 같습니다.
꼭두극·사물놀이·남사당 풍물패 유럽공연을 제가 한국에서는 처음으로 시도한 셈인데 그런 것이 백남준의 예술적 시도에서도 일맥상통하는 것 같아요. 내가 꼭두극단을 만들고 자문을 얻어 '인형극'이 아니라 꼭두놀음패 '어릿광대'라고 지었는데 백남준은 스스로를 '무당'이나 '어릿광대'라는 비유했잖아요.
더군다나 백남준이 한국에 온 첫 해인 1984년 내가 제작한 꼭두극 '양주별산대'를 가지고 동독 드레스덴에서 열린 '세계꼭두극페스티벌'에 참석하게 됐는데 당시로는 동구권참가라 우리나라에도 역사적인 일이었지요. 국가지원 없이 나 혼자서 해나가기가 힘들다니까, 백남준은 '경희가 굉장한 일을 하는데 내가 뭘 도와줄까?' 하더니, 마침 자기가 조금 후에 문공부장관을 만나러 가니 도움을 청하겠다는 거예요.
나는 한마디로 거절했습니다. 아니, 고국에 돌아와서 문공부장관을 처음 만나는 자리에서 그런 자기의 유치원 친구를 도와달라고 한다니 그게 말이 안 되지요. 1984년 유럽공연을 잘 마쳤더니 연말에 백남준이 나에게 '구라파 순회공연 축하!'라고 쓴 엽서를 보내줬어요. 우린 이상할 정도로 상통하는 데가 많아 보입니다."
- 백남준은 아이디어가 많은 천재인데 왜 머리보다 몸을 중시했나요?"왜 몸이냐고요? 백남준은 인간의 본능을 그대로 귀하게 여기며 살아 온 사람으로 생각합니다. 그의 머리가 쉴 새 없이 전기스파크 같은 불꽃을 일으켜도 그는 몸을 먼저 주제로 삼은 것 같아요. 그렇게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그런 생각을 몸으로 실현하고 행위로 표현한 것이 아닌가라고 나는 해석하고 싶습니다.
일상에서 그래요. 그가 삶에서 보인 즉흥적 해결법이나 번갯불 같은 발상은 놀라워요. 1984년 귀국 후 두 번째 만나는 날에 처음 인터뷰에서 그가 위성 쇼 <굿모닝 미스터오웰>을 하다 빚을 많이 졌다는 말이 안쓰러워 내가 봉투에 200달러를 넣고 갔어요. 그리고는 이것으로 빚 갚는데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는 글을 쪽지에 쓰고는 이 쪽지를 내가 간 다음에 없애달라고 했어요. 그는 '내가 한국에서 달러를 가지고 나가면 안 되지. 이 돈, 경희가 가지고 있다가 내가 달랠 때줘' 하고는 내 손을 붙잡고 화장실 문을 열더니 변기 속에 쪽지를 넣고 물을 내리는 거예요. 나에게 쪽지를 없앴다는 확인을 시켜주는 그런 번갯불 같은 기지를 나는 모르고 화장실 문을 열기에 당황했던 일이 있어요."
'남준이 색시'라는 특별한 관계에 대한 의무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