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남준 I '자화상' 혼합재료 61×69×40cm 1989. '혁명'이라는 단어가 인상적이다
김형순
- 백남준 선생과 이영철 관장이 좀 닮아 보이는데요?"아 글쎄요. 박수 무당과 대샤먼의 차이겠지요. 백 선생께서 예술이 뭐냐고 묻는 기자의 질문에 '자유를 위한 자유의 추구'라고 했는데, 전 공감해요. 목적론적인 '무엇으로부터 자유'보다 '자유를 위한 자유'가 더 좋거든요. 전 생각만 도발적인데 백 선생은 생각과 행동에 있어 시차가 없이 특히 예술에서는 완전한 도발 그 자체이지요.
백남준아트센터 초대관장으로 3년간 일하면서 온통 그의 세계에 빠졌어요. 지금도 언제 어디서나 그분에 대해 생각하며 일합니다. 제가 발견한 건 아주 넓고 깊은 그분의 사유와 예술 속에 일정한 코드가 있다는 거예요. 차츰 이야기하죠."
- 백남준은 직접 뵌 적이 있는지 그의 이름은 언제 알게 되었나요?"직접 만난 적은 없어요. 학부에서 사회학을 하고 대학원에서 미학을 했지만, 대학 1학년 때부터 미술에 관심 많아, 당시 북아현동에 공간을 마련해 '무제'라는 미술 비전공자 친구들과 동호인 서클을 만들었어요. 그 무렵 처음 백남준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어요. 비디오아트의 창시자라는 비평가의 말에 그게 예술이 되나 싶었어요.
70년대 <독서생활>이라는 월간지가 있었는데 그 기사에서 백남준이 TV에 얼굴 내밀고 있는 흑백사진의 이미지가 낯설었어요. TV로 하는 예술, 그건 조상이 없는 예술이잖아요. 당시엔 '앨런 카프로우'같은 해프닝아트와 '개념, 논리, 현상'을 파악하는 '개념미술'이 확산될 때 백남준의 예술적 사유가 어디서 나왔는지 궁금했어요."
- 미국의 저명 미술사가 중 백남준을 왜곡하는 경우도 있다면서요?"몇 년 전 출간된 <20세기 현대미술>(로잘린 크라우스, 할 포스터 외) 책을 보면 다른 현대작가에 비해 민망할 정도로 백남준을 축소 왜곡하고 있어요. 백남준을 '플럭서스'(전위예술단체)의 한 멤버로만 봐요. 백남준의 해프닝아트 파트너인 첼리스트 '샬럿 무어먼'을 성적으로 대상화했다고 비판하기도 했죠.
'케이지', '보이스', '라우센버그', '재스퍼 존스' 등과 비교하면 백남준을 말이 안 될 정도로 다뤄지고 있어요. 시각 예술의 문맥에서만 보자면 백남준이 안 보이는 거죠. 음악계에서는 아예 언급조차 없고요. 제가 보기엔 지금 벌어지고 있는 새로운 예술의 대부분이 일찍이 그가 예견했고 실험했던 예술의 범위 안에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