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장실에서 인터뷰에 응하는 백남준아트센터 박만우관장
김형순
백남준은 첫 전시 제목이 왜 '음악의 전시'이며 첫 전시에서 피아노, TV, 비디오, 소머리가 걸리는지. 왜 욕조에 뮤즈를 훼손시켰고 음악의 가시화, 시각화가 정말 가능한 것인지. 그리고 먹통의 상징 같은 TV가 어떻게 소통을 대변하는 예술매체가 됐는지 등을 박만우 백남준아트센터 관장을 그의 관장실에서 지난 2월 25일 인터뷰했다.
- 백남준 선생은 언제 처음 만나셨는지요? "제가 무슨 인연으로 백남준아트센터에 와서 일하고 있나 싶죠. 저는 백 선생을 비교적 일찍 뵌 편이지요. 1983년 '굿모닝 미스터오웰' 프로젝트 때문에 30여 년 만에 처음 한국에 오셨잖습니까. 전 당시 대학원을 졸업하고 KBS 교육제작국에서 일하고 있었기에 거기 로비에서 만날 수밖에 없었죠.
그때는 제가 '전통문화강좌', 'TV미술관' 등을 만들며 구성작가 비슷한 역할을 했어요. 1984년 1월 1일 '굿모닝 미스터오웰' 할 때 그걸 생생하게 지켜봤었죠. 그럼에도 내가 저분을 위해서 뭘 하겠다는 생각은 미처 못했고 그저 흥분에 휩싸였죠.
제가 1985년 12월 파리에 갔을 때, 눈이 오는 어느 추운 날이었어요. 세미나를 같이 듣는, 전에 영상 원장 하시던 최민 선생이 '아르데코(파리국립장식미술학교)'에서 백남준 특강이 있다고 하면서 같이 듣자고 해 갔었어요. 영어로 하는데 영어도 영어지만 '분자생물학' 뭐 이런 이야기가 튀어나오니까 못 알아듣겠더라고요.
근데 당시 동유럽 유고아티스트들도 쫓아왔었어요. 크림치즈, 무스 같은 것을 얼굴에 뿌리고 해프닝 아트하고…. 그때 파리에서 또 뵈었죠. 대학, 대학원 시절 은사인 임명방 교수와 이우환 선생도 그랬지만, 백남준에 대해 많이 언급해 얘기는 많이 들었죠. 당시 저는 아직 젊은 학생이니까 백남준에 대한 강한 인상을 받았어요."
- 2006년에도 그와 어떤 인연이 있었다고요? "백남준 선생이 2006년 초 돌아가셨잖아요. 당시 제가 부산비엔날레 총감독할 때였는데 파리 출장을 갔다가 바스티유 '메종 로즈(Maison Rose)'에서 비디오 아트 컬렉터 전을 하고 있더라고요. 오프닝 하는 날, 영국 큐레이터 소개로 페스티벌과 아트페어를 절충하는 방식으로 비디오 아트를 기획하는 '바르셀로나 루프(Loop)' 팀을 만났어요.
이 팀은 바르셀로나 시 주최로 2006년 봄, 비디오 페스티벌 차원에서 최초로 백남준 추모 국제 세미나를 발 빠르게 진행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날 보고 미디어 아트 관련 글도 쓰고 연구도 많이 했으니 한국인으로서 아시아를 대표해 한 분야를 발표하라고 해 얼떨결에 승낙했지요. 나중에 보니 발표자들의 면면이 대단했어요.
서울로 오면서 뭘 발표해야지 고민이 많았어요. 귀국해보니 마침 백남준 아트센터 기공식이 있었죠. 고궁박물관에선 백남준의 뉴욕스튜디오를 재현한 '메모라빌리아'를 만들어놓고, 미국국립미술관이 소장한 작품도 소개됐어요. 그중 백남준 유작 '엄마'를 보고 큰 충격을 받았어요. 그래서 제가 '백남준 후반기 비디오 작업에 있어 모국 또는 모성이미지의 매트릭스'라는 제목으로 주제 발표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