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김정은, 중 대표단 면담... 시진핑 친서 전달받아북한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2012년 11월 30일 방북 중인 리젠궈(李建國) 중앙위원회 정치국원 겸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회 부위원장을 단장으로 하는 중국 공산단 대표단을 접견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보도했다. 김 제1위원장은 이날 중국 공산당 대표단으로부터 시진핑(習近平) 공산당 총서기의 친서를 전달받았다.
평양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북한 핵실험 이후 한미 연합 군사훈련 그리고 이에 대한 북한의 핵 공격 위협 등 한반도 긴장은 좀처럼 완화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그만큼 북한의 '혈맹국' 중국의 적극적 역할을 기대하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국내나 미국 쪽에서는 중국이 이전과 달리 북한의 행태에 '짜증'을 내고 있다거나, 더 나아가 한미 양국의 기대에 적극적으로 동조할 것이란 보도까지 나오고 있다. 과연 그러한가? 중국의 역할을 기대하기 위해서라도 중국의 대북 전략을 우선 면밀히 이해할 필요가 있다.
중, 왜 나만 갖고 그래? 북한이 합리적이라면(비합리적이었다면 애초 핵보유를 시도도 하지 않았을 테니), 자신들의 벼랑 끝 외교로 가장 난처할 국가가 중국이라는 걸 모를 리 없다. 그럼에도 벼랑 끝 전술을 감행한다는 것은 결국 중국을 난처하게 해 그 반대급부로 무엇인가를 '갈취'하려는 시도로 볼 수 있다. 동맹국 중국에 존재감을 부각하려는 것이다.
미국은 어떠한가? 사실 미국에 북한의 위협은 위협이라기보다는 전략적 자산이 될 수 있다. 동북아 동맹구조를 강화하고, 비확산과 미사일방어체제 강화에 그럴듯한 명분이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미국은 한발 떨어져 중국에 책임을 떠넘긴다. 당신들이 북한의 후견 국이니 책임지라고.
그러나 중국은 북한을 전적으로 지지할 수도 그렇다고 미국의 요구를 수용할 수도 없는 진퇴양난의 처지다. 왜 북한을 전적으로 지지할 수 없는가? 개혁개방기초반 덩샤오핑은 개혁개방 중에서도 반드시 지켜야 할 '4개항 기본원칙'을 제시하였다. 그 핵심은 '공산당 영도'였다. 이후 공산당 일당 지배구조와 경제발전은 서로 목적이 되고 또 수단이 되었다.
즉, 경제발전을 위해서는 공산당이 영도해야 하고, 반대로 공산당 영도를 공고히 하기 위해서는 지속적 경제발전이 이루어져 한다는 것이다. 지속적 경제발전을 하기 위해서는 자본주의 종주국 미국과의 원만한 관계가 필수적이다. 따라서 동맹국 북한의 벼랑 끝 외교는 자칫 중미 관계의 파국, 중국경제 악화 그리고 공산당 일당지배체제의 붕괴라는 최악의 연쇄반응을 일으킬 수 있다.
여전히 '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린다'중국은 왜 또 미국의 요구를 수용할 수 없는가? '케케묵은' 순망치한의 논리가 2013년에도 여전히 죽지 않았기 때문이다. 순망치한은 지정학이라는 구조의 논리이기 때문에 일시적 상황변화로 인해 소멸될 운명이 아니다. 1592년 임진왜란, 1894년 청일전쟁, 1950년 한국전쟁시, 그리고 1994년 6월 미국의 영변폭격 가능성이 대두되는 상황에서 중국지도부가 일관되게 강조한 논리가 바로 순망치한이었다.
중국지도부가 누가 되든, 체제와 이념이 무엇이든 순망치한이란 논리는 살아있다. 현재 아무리 미중 관계가 안정적이라 해도 '아시아로의 회귀'를 외치면서 대중국 포위 가능성을 높이는 미국을 전적으로 믿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러한 딜레마에는 해결책이 없다. 오로지 '관리'만이 있을 뿐이다. 중국이 1990년대부터 일관적으로 주장해온 '한반도 비핵화'와 '한반도 안정과 평화'는 난처한 상황을 관리하고자 하는 전략적 수사다. 한반도 비핵화는 북한의 자제를 희망하는 메시지며 한반도 안정과 평화는 미국의 대북 강경책을 견제하려는 메시지다.
언제나 이 두 가지 정책 사이에서 중국의 대응수준이 결정되어 왔다. 중국은 상황에 따라 자신의 대북영향력이 예전만 못하다고 '엄살'을 부리기도 하고, 6자 회담을 추진해 한반도 비핵화를 외치면서 북미 간 관계개선을 도와주려는 의도를 보이기도 한다. 아울러, 북한문제를 이용해 MD체제를 강화하려는 미국을 질책하기도 하고 반대로 북한이 선을 넘는다 싶으면 원유공급 중단 같은 '비공식적' 대북압력을 행사하기도 한다.
대원군을 납치했던 청나라이러한 행태는 19세기 말 조선에 대한 청의 행태와 별반 다르지 않다. 그때나 지금이나 한반도를 둘러싼 강대국들의 이해관계가 크게 변하지 않았다는 데서 그리 놀라운 일도 아니다. 병인양요(1866)와 신미양요(1871)가 발생하자 서구는 조선의 종주국인 청에게 중재를 요구하였다.
그러나 청은 "조선은 외교와 내치는 자주"라는 소위 '속국자주' 논리를 내세워 책임을 회피한다. 현재 자국의 대북 영향력에 한계가 있다며 미국의 문제 해결 요구를 회피하는 것과 비슷하다. 아울러, 청이 1882년 자국의 지도 하에 조선의 대미수교를 주도했던 사실은 현재 6자회담을 기초로 북한의 대미 관계 개선을 유도하려는 것과 유사하다.
청은 1882년 임오군란 시 배후로 지목된 대원군을 재빠르게 납치하는 '정권교체'를 단행하기도 하였다. 조선의 호전적 행동이 청일 간 분쟁을 조장한다는 이유에서였다. 1884년 갑신정변 직후에는 원세개를 파견해 청일전쟁 전까지 일종의 직할 통치를 감행하기도 하였다. 중화질서로부터 조선의 이탈을 원천봉쇄하겠다는 의도에서였다. 북한이 향후 중국이 용인할 수 없는 극단적인 행동(전면적 도발이나 친미국가로의 자기변신)을 감행할 경우 이러한 중국의 강경책이 반복되지 말란 법은 없다.
중국을 진정한 '책임대국'으로 만들려면? 중국은 북한에 대한 딜레마가 해결되지 않는 한 미국이나 한국이 기대하는 대로 북한에 대한 강력한 압력을 행사할 합리적 이유가 없다. 그렇다면 어떠한 상황이 중국의 딜레마를 해소시킬 구조적 변화인가?
첫째, 북한 붕괴. 당연히 북한 붕괴는 중국의 대북 딜레마 자체를 소멸시킨다. 문제는 순망치한이라는 지정학적 논리가 공고하고 또한 미국을 완전히 신뢰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중국으로서는 미국의 입장이 투영될 수밖에 없는 북한 붕괴를 결코 수용할 수 없다는 것이다. 차라리 그보다는 1882년 대원군 납치와 같은 단순한 정권교체가 합리적일지 모른다.
둘째, 북미 관계 정상화. 미국으로부터의 안전보장은 북한이 현 국제질서로 편입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북한에 벼랑 끝 전술은 효용가치를 상실하며 그 결과 중국의 딜레마도 해소된다.
그러나 북한의 대미 관계 정상화에는 '중국의 지도 하에' 라는 조건이 반드시 붙어야만 한다. 중국이 소외된 북미 관계 정상화는 중국으로서는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 한반도라는 지정학적 자산을 잃어버리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북한만큼의 동맹국이었던 북베트남이 중국을 소외시키고 소련으로 배를 갈아탔던 트라우마는 쉽게 치유되기 어렵다. 6·15 남북정상회담에서 김정일의 "통일 후 주한미군 주둔 가능" 발언, 10·4 공동선언에서 중국을 배제하는 뉘앙스의 "3자 혹은 4자의 평화협정" 등의 문구는 여전히 중국을 식겁하게 하는 것이다.
해결책은 없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