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평1리 배성우씨가 훼손된 산소 위치를 가리키며 설명하고 있다.
조정훈
"저 놈들은 여기 있던 무덤까지 파헤쳤어. 세상에! 추석 전에 3명의 사람들이 벌초하러 왔다가 산소를 못 찾고 돌아갔는데 확인해보니 남산 3리에 사는 최아무개 장모님 산소야. 그냥 뭉개버렸어."
이와 관련 한전 대구지사 황성하 차장은 <오마이뉴스>와의 전화통화에서 다른 말을 했다. "묘지 주인이 위치를 잘못알고 있다"는 것. 그런데 최아무개씨의 처초카인 도용훈씨는 "지난 추석 전에 벌초하러 왔다가 1시간동안 헤매고 돌아갔다"면서 "20년동안 벌초를 다녔는 데 산소 위치를 모른다는 게 말이 되냐"고 말했다.
배씨는 이 동네에서 선하지(송전선이 지나가는 땅의 좌우 3m 지역) 보상 대상인 3명 중의 한명이기도 하다. 시공사 측은 그에게 300만원을 제시했다고 한다. 나중에는 700만원을 더 얹어주겠다고 회유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팔 수도 없고 농사를 지을 수도 없는 땅이 되었다"면서 "돈도 필요 없으니 자식들이 퇴직하면 이곳에 와서 농사를 지을 수 있게 해 달라"고 말했다.
할머니들과 용역들의 전투가 벌어지는 삼평1리는 이미 7기의 송전탑으로 포위됐다. 뒷산의 23호기가 세워지면 앞산의 22호기에 초고압전선을 연결해 마을을 가로지를 수 있다. 송전선은 이 마을의 논과 밭, 과수원을 지나며, 심지어 30~40m 떨어진 곳에 가정집도 있다. 주민들의 반대가 극심한 이유이다.
그래서 이곳은 한전이 청도군에 설치하려 했던 41개 송전탑 중 유일하게 공사를 하지 못한 구간이다. 한전으로 볼 때 여기를 함락하지 못하면 전선까지 얹은 일부 송전탑을 철거하고 송전선로도 변경해야 한다. 주민들은 고압선 700m를 땅 속으로 묻어달라고도 호소하기도 했다. 하지만 한전 대구지사 황 차장은 "하천과 논밭 밑을 터널식으로 뚫어야 하는 데 비용이 많이 들기도 하지만 지형적인 여건상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18장의 주민의견서 중 10장이 위조" 삼평1리에는 45가구가 산다. 이중 15가구가 송전탑 건설 반대 운동에 적극 뛰어들었다. 송전선로에서 가까운 지역의 사람들이다. 한전 측이 '떡고물'(1억7천만 원의 지역 지원 사업비)을 내밀자 사람들이 떨어져 나갔다. 김춘화(66)씨는 "한전이 돈으로 주민들을 이간질 하고 있다"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송전탑은 지역 공동체도 허물고 있다.
이 마을 주민 13명은 지난 7월20일 (주)서광이엔씨 현장 소장으로부터 '통고서'를 받았다. '적법한 절차'에 따라 공사를 하는 데 주민들이 방해해서 작업이 늦어졌고 2억 9700만 원의 경제적 손실을 입었다는 것. 조만간 손해배상 등 구상권을 청구할 예정이라는 경고장이다. 정둣세 할머니는 "마을회관에서 한번 (통고서를) 쳐다보고 버렸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현장소장의 말처럼 이 사업은 적절한 절차를 거쳤을까? 한전 측은 2006년 1월에 주민설명회를 했고, 18장의 '주민의견서'를 받았다고 주장한다. 의견 수렴을 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당시 열린 주민설명회에는 이 마을의 유지 3-5명 정도만 참석했다. 다른 주민들은 주민설명회가 열리는 것도 몰랐다. 그나마 18장의 주민 의견서도 논란거리다.
"각북면에 15개 마을이 있는 데 다른 마을에서 낸 의견서는 없고 우리 동네에서만 18개의 의견서가 들어갔다. 이중 10장은 글씨체가 똑같아서 파악을 해보니 마을회관에 비치된 주민들의 도장을 도용한 것이었다. 이 사실은 당시 이장도 고백했다. 또 4장은 2009년에 공청회를 한다고 해서 동의한 주민들의 의견서인데 이를 2006년에 제출한 것으로 위조했다." (이은주 마을 부녀회장) 주민들은 당시 의견서를 제출한 전 이장을 지난해 사문서 위조 혐의로 고발했다. 대구검찰청은 증거불충분으로 '혐의 없음'(공소권 없음) 처분을 했다. 고소인들은 대구고검에 항고했지만 기각했다. 그런데 대구검찰청이 불기소처분을 한 이유는 이 의견서의 위조 여부와 관련이 있는 것이 아니었다. 2006년 3월에 작성된 것이어서 공소시효가 지났다는 것이었다.
주민들은 또 당시 송전선로 도면 등을 주민들에게 보여줘야 하는 데 이 절차를 생략한 3명의 공무원을 직무유기 혐의로 고발했다. 이 역시도 검찰은 불기소 처분했다. '업무가 미숙해서 조치사항을 이행하지 않았을 뿐 고의적으로 업무를 포기, 방임한 사실을 인정할만한 증거가 없다'는 것이다. 주민들이 송선선로 결정의 원인무효를 주장하고, 검찰 처분을 불신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주민들은 이 건에 대해 재정신청을 했다.
괴물 송전탑을 만든 건 '무소불위' 전원개발촉진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