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닛코 신사 내의 돌탑 앞 종이매듭
장윤선
잠시 비를 피하며 벤치에 앉아 일본의 하늘을 바라보았다. 지금의 이 하늘, 아버지도 보았는지 궁금해진다. 아버지는 닛코에 와 보긴 와 본 것일까. 1930년대 말, 한 식민지 소년은 이 거대한 유적 앞에서 어떤 생각을 했을지.
아버지는 철들 무렵까지도 조국인 조선을 본 적이 없다. 조선에 대해서는 그저 안 좋은 이야기들만 들었을 것이다. 가난, 파멸, 부패, 무지…. 그에 비해 실질적 고향일 일본은 몇 개의 식민지와 막강한 군대를 거느린 동아시아의 대국이라고 배우고 자랐을 것이다. 그 당시의 닛코가 지금과 같은 규모일지는 모르지만, 만약 이런 모습의 닛코를 보았더라면 아버지도 틀림없이 삼나무 숲에 압도당하고 말았을 것이다.
점심 시간이 지나서도 비는 그칠 줄을 몰랐다. 나는 잠시 쉬었다가 일어나 500엔을 더 내고 도쿠가와의 유해가 안장된 사당으로 올라갔다. 여기를 통과하기 전에는 묘하게 웃는 얼굴의 고양이 조각을 볼 수가 있다. 작은 조각상이었지만 아주 유명한지라 사진을 찍는 사람들로 붐볐다.
삼나무 숲에는 비또, 삼나무 숲이 펼쳐진다. 나무들 사이로는 안개 섞인 빗방울을 맞고 있는 오래된 돌계단이 펼쳐지고 나는 헐떡거리며 계단을 올라갔다. 이 계단을 둘러싼 삼나무의 착 가라앉은 속삭임이 비를 뚫고 계속 나를 압박해왔다. 너는 아버지를 사랑했는지. 아버지는 너를 사랑했는데. 왜 아버지가 그리도 멀게 느껴졌는지. 아버지의 부음을 받고도 끝내 하던 일을 다 마치고 간 이유가 무엇인지.
나와 아버지의 관계는 이 빗속의 닛코의 안개처럼 모든 것이 희미하기만 했다. 아버지는 극과 극을 달릴 때가 많았다. 낙천적이고 유머러스한 면이 있었던 반면, 한 번 화가 나면 아무도 말리지 못했다. 우선 입에 담기 힘든 욕설이 시작되고, 풀어진 허리띠가 면상에 날아오는가 하면 밥상이 통째로 마루를 굴렀다. 나도, 오빠들도, 올케들까지도 몇 번씩 당하는 일이었다.
이유는 없었다. 어떤 때는 전화를 늦게 받아서였고 또 어떤 때는 아침에 학교 갈 준비를 하며 떠들었기 때문이었다. 술을 마시고 들어오는 날에는 온 식구들이 피난처를 찾아 헤매 다녔다. 나는 침대 밑이나 문 뒤에 잘 숨었다. 그러면 술 냄새가 물씬 풍기는 아버지의 숨소리가 가까이서 느껴지고, 나는 두려움에 온 몸이 사시나무 떨리 듯했다.
중학교 입학 이후에도 아버지의 그런 행동은 나아질 기미가 없었다. 사업이 결정적으로 좌초되기 전까지는 말이다. 한 번 크게 성공했던 아버지는 성공만큼의 처절한 실패를 맛보았다. 가재도구를 다 차압으로 빼앗기고 난 저녁, 빚쟁이를 피해 숨어 다니던 아버지가 만취해 한밤중에 집에 들어오던 그날을 나는 잊지 못한다. 우리 형제들은 방 문고리를 잡고 오들오들 떨고 있었고, 아버지는 손에 잡히는 물건을 있는 대로 내동댕이치며 절규했었지. 망했어, 다 망해 버렸다고.
그즈음 아버지는 사업 실패의 충격으로 한쪽 팔이 마비되었고 백내장도 앓았다. 꽤 튼실한 목재공장을 운영했던 아버지. 아버지는 당신이 망하게 된 계기가 일본으로의 무리한 수출 때문이라고 했다. 대기업과의 경쟁에서 자꾸 밀리면서 사업을 확장하다가 빚을 못 갚게 된 것이라고. 그래도 평화의 댐 공사에도 납품을 했었다며, 국책사업에 참여했던 기억을 자랑스럽게 늘어놓았던 아버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