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사쿠사 앞 불상
장윤선
한류의 신 중심지라는 신오쿠보역에 도착했다. 나리타 공항에서 한 시간 반쯤 왔을까. 지하철을 타는 내내 서서 오고 배낭은 무겁고 돈을 아끼느라 간단한 점심만 먹었더니 도착하자마자 지쳐버렸다. 내 방은 도미토리인데, 아직 나 말고는 아무도 없었다. 햇볕이 거의 들어오지 않는 어두운 다다미방 안에서 나는 피곤과 고독감에 어처구니없이 서러워지기까지 했다.
방에 있으면 울음보라도 터질 것 같아서 결국 신오쿠보 역으로 나섰다. 곳곳에 한글 간판이 즐비하고 한류스타 장근석 및 여러 한국 연예인들의 사진이 붙어 있다. 일단 밖으로 나오니 뭔가 숨통이 트이는 것 같았다. 공항에서부터 나를 괴롭히던 찌질한 짠순이의 그림자를 벗어 버리고 싶어 통유리가 근사한 카페로 향했다.
한국 같으면 두 끼 식사비로 충분한 돈을 케이크 하나와 커피 값으로 지불하고 나니 왠지 기분이 좋아졌고, 그 기세를 몰아 골목길에서 담배 한 대를 피워 물었다. 집에서는 쉬쉬하며 베란다 한 구석에 숨어 피던 담배이건만, 여기서 보란 듯이 연기를 뿜어 올리니 한 순간에 잔다르크라도 된 기분이었다. 나는 지하철을 타기 전 심사숙고하여 가지고 온 소설 <대망>을 끄집어냈다. 지난 달 큰 맘 먹고 주문한 무려 32권짜리 일본 대하소설이다.
"너 일본이 얼마나 선진국인지 아나? 일본 같은 나라가 세상에 없다. 내 처음 일본에서 나와서 청도에 왔을 때 정말 얼매나 놀랬는지 원, 전기가 들어오나 전화가 되나. 그 깡촌에서 대식구 먹여 살리느라고. 니 할아버지는 무위도식하지, 장남이라고 다들 내만 쳐다보고 않았나."아버지의 음성이 들리는 듯하다. 아버지는 일본 태생이다. 아마 오사카에서 출생했다고 한 것 같다. 아버지는 늘 일본을 그리워했고 우리나라를 꼭 '조선'이라고 불렀다. 조선옷, 조선음식…. 그러고 보니 할머니도 '니, 시, 로코' 하며 일본말로 숫자를 세었지.
삼촌과 고모들까지 모두 일본 태생이고 일본에서 초등학교를 다녔다고는 하지만 아버지의 일본 생활이 어땠는지 세세하게 들은 적은 없다. 그러나 아버지는 나 몰래, 식구들 몰래 일본에 몇 번이나 다녀오곤 했다. 다녀오고 나서는 꼭 삼촌을 찾았어야 했는데 못 찾았다며 한탄을 했는데, 그럴 때마다 엄마는 신경질적으로 한 마디 하곤 했다.
"또 그 삼촌 타령! 조총련 간 사람을 뭐하러 찾아요? 어디 북송선이라도 탔으면 누구한테 불똥 튀라고! 원 니 아버지는 생각도 없이 참!"엄마야 핀잔을 하든 말든, 천성이 낙천적이던 아버지는 싱글벙글 웃으며 술 한 잔에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옌카나 심지어 기미가요까지 불렀다. 그러면서 일본인들의 천황에 대한 충성심, 단결심에 대해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면서 '조선'은 아직도 멀었다는 말을 되풀이하곤 했다.
아마도 내가 아버지에게 정서적 거리감을 느끼게 된 것은 이런 아버지의 일본 사랑이 그 시초였는지도 모른다. 내 주변에서 일본을 이토록 사랑한 사람은 아버지 외에 몇몇 철없는 중고등학생들뿐이었다. 일본이라 하면 국권침탈, 위안부 할머니 등과 연관되는 불구대천의 원수로, 언젠가는 바다에 가라앉기를 소망하는 것이 한국인들의 보편적 정서이거늘, 어쩌자고 일본 사랑을 저리도 거침없이 내비치는지 어이가 없었다.
그런 아버지가 가장 존경하는 인물은 바로 도쿠가와 이에야스였다. 이 책, 내가 지금 아버지의 실제 고향인 일본에서 손에 들고 있는 <대망-도쿠가와 이에야스>는 도쿠가와의 일대기를 그린 책이다. 이 책은 내가 어릴 때부터 우리 집 책장에 가지런히 꽂혀 있었다. 그 외에 다른 일본 책들도 많았지만, 이 책만큼 아버지가 애지중지 한 책은 없었다.
도쿄, 잃어버린 꿈을 꾸다